가진이 철함사 대웅전 뒤로 사라지는 진가경을 따라가려다가 멈칫
서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후유, 꿈이었구나"

가진이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꿈속에서 자신의 관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하던 진가경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꿈이 어쩌면 가진 자기의 죽을날도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긴 지금 심정 같아서는 가진도 며느리 진가경을 따라 죽고만 싶기도
하였다.

가진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사람을 또 철함사에 보내어 자기가 지시한
사항들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나 점검을 해보도록 하였다.

희봉도 진가경의 발인이 하루하루 가까워오자 더욱 긴장하여 빈틈없이
일들을 챙겼다.

녕국부와 영국부에서 진가경의 영구를 따라갈 마차와 사람들을 정하고,
철함사에서 묵을 사람들의 수를 확인하는등, 챙겨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이런 와중에 서로 교분이 있는 존귀한 가문의 경조사들이 겹쳐 그것들
까지 챙기느라 희봉은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선국공 아내의 별세, 서안군왕 왕비의 생신일, 진국공 부인의 첫아들
해산 등등의 일들이 있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상하고 축하하고 선물을
보내었다.

게다가 희봉의 오빠인 왕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므로 희봉은 친정 부모님께 문안 편지를 쓰고 선물도 장만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시누이인 영춘이 갑자기 병이 들어 몸져 눕는 바람에 의원을
부른다 약을 짓는다 정신이 없었다.

어떤 때는 희봉이 밥 한끼도 제 시간에 챙겨먹기가 힘든 날도 있었다.

잠시 편한 자세로 쉬고 싶어도 그럴 짬조차 없었다.

녕국부로 오면 영국부 사람들이 부절을 받기위해 찾아오고, 영국부로
돌아가면 이번에는 녕국부 사람들이 급한 일이라면서 찾아오곤 하였다.

하루는 희봉이 녕국부에서 일을 마치고 영국부로 수레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 어찔 현기증이 나면서 기절을 할것 같았는데, 이러다가
진가경처럼 요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편 가련도 없는 가운데 말을 잘 듣지 않는 거친 하인들을
부리며 일을 해나가려니 외로움이 뼛속까지 파고들기도 하였다.

드디어 진가경의 발인 전날밤이 돌아왔다.

이날 밤은 모두 잠을 자지 않고 불을 대낮처럼 밝힌 채 밤샘을 해야만
하였다.

진가경이 죽은지 49일이나 되었으므로 이제는 슬픔들이 어느정도
진정되어 사람들은 끼리끼리 놀이를 하며 크게 웃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