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백엔대에 육박하는 엔고후퇴가 일본을 경기침체의 늪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일시적인 긴급수혈은 되겠지만 건강회복을 보장하는 치료약은
아니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엔화 급등세는 이달초부터 하락세로 반전, 한달보름여만에 달러에 대한
엔화가치가 14%나 하락했다.

16일에는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당 94엔대로 시작한 엔화가 단숨에 4엔이나
하락, 하룻만에 3%나 떨어지는 급락세를 연출했다.

이같은 하락세는 17일에도 이어져 98엔대를 맴돌고 있다.

엔화급락의 여파가 당장 나타난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도쿄주식시장에서는 16일 하룻동안 주가가 4%나 뛰어오른데 이어 17일에도
강세를 유지했다.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기력을 잃어가던 일본의 수출업체들이 활력소를 얻을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된데 따른 것이었다.

달러당 엔화가 1백엔대로 떨어지면 닛케이평균주가는 최소한 20000엔까지
반등할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주가상승은 일본경제의 최대 두통거리인 은행부실채권 문제 해결로 연결될
수있다는 점에서 경제회복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본 은행들은 대개 포트폴리오투자(투자수익획득을 목표로 각종 유가증권
에 투자하는것)를 통해 번 돈으로 부실채권을 청산한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게 되면 은행의 유가증권보유자산 가치도 올라가고
그만큼 부실채권 해결능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역효과 역시 만만찮다.

주가가 급등하면 은행들은 부실채권 청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량 주식
매각에 나설 것이고 결국 주식시장을 다시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때문에 "일본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최소한 10조엔을 쓰겠다고 즉각
약속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은 다시 침체로빠져들 것"이라는 주장
(앵도수에즈사의 투자매니저 마크 포세트)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행 부실채권의 근본적 원인이 부동산시장 침체라는 점도 엔고후퇴의
긍정적 요인을 반감시키는 대목이다.

일본은행의 부실채권은 총 40조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은행담보=부동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에서 부동산가격 급락은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UBS증권사의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로크로우는 "부동산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한 실질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엔화약세기조의 지속기간이 경제회복 여부의 핵심 변수임은 물론이다.

메릴린치증권사는 달러당 1백엔대의 환율이 올 연말까지 계속되고 1년안에
1백5엔까지달러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일본기업들은 세계 수출시장에서 "매이드인 저팬"의 맹위를
다시 떨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업체들은 그동안 공장의 해외이전과 리스트럭처링을 통해 원가절감에
갖은 힘을다 기울여왔다.

그러나 엔고로 가격경쟁력이 "자동하락"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노력은 경쟁력의 하락속도를 늦추는 효과 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오자와유키오 소니 부이사의 표현대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위에서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 것"과 같았던 셈이다.

이제 엔고가 멈춤으로써 진짜 실력을 발휘할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오자와부사장은 반기고 있다.

UBS에 따르면 일본의 상위 25개 자동차및 부품업체들은 달러당 98엔대의
환율이 1년여 지속될 경우 90엔대의 환율에서보다 총 40억달러의 이익을 더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같은 수출경쟁력 회복에 힘입어 일본 국내총생산(GDP)증가율도 올해 1%,
내년 1.6%로 당초 예상(올해 0.5%,내년 1.2%)을 크게 상회할 전망이다.

그러나 단지 엔화약세라는 요인만으로 이같은 회복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엔고후퇴의 기회를 소비붐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일본과 전세계 소비심리가 되살아나지 않는한 아무리 엔화가 하락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일본상품에 손을 뻗치지 않을 것"이라는 오자와 소니부이사의
지적도 바로 이점을 강조한 것이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