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피천득"의 이순간중 불혹의 후반을 넘긴 나이(50년생)에 국민학교동창
모임에 나간다고 하면 선배들은 향수에 젖은 부러운 눈빛이었고 후배들은
무슨 고리타분한 옛날얘기냐면서 웃어 넘겼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그 끈질긴 만남과 농익은 우정에 놀라워하곤
했다.

이름하여 14명회원의 성흥회.

누가 몸으로 느끼는 도시라고 말했던가?

백제의 고도부여에서 금강을 건너 한산방면으로 15km를 들어간곳 충남
부여군 임천면 임천국민학교 47회 동창생 모임이다.

임천면은 백제시대에 가림군에서 조선 태종때 임천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913년 부여군 임천면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산간마을이다.

임천국민학교뒷편에 위치한 해발 268m의 성흥산에는 백제 동성왕(501년)이
10년에 걸쳐 축성했다는 성흥산성이 상당부분 남아 있으며 산 중턱에 자리한
대조사에는 은진미륵 다음으로 크다는 미륵입상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리동 오리정 돌팍모래기 창머루등 아 그리운 고향마을 이름들이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가 서울에서 처음 만나기 시작한것은 69년 봄부터였다.

초창기에는 매달 세째주 금요일 누구라도 서울역앞 교통센타 지하다방에
2면 동창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그렇게 8년여를 지나다가 조직정비(?)에 나서
모임의 틀을 갖춘것이 77년가을 대원강업상무 성열각회원의 노고가 컸다.

초기에는 매월 모였으나 이제는 격월 마지막주에 만나고 있는데 연말에는
부부동반 모임도 가지면서 서로의 애경사에 오가는 정이 두텁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