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복 50년 아침에 세대차 크게 없는 한국인 누구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격이 뭉클 복바친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도 앞뒤로 줄닿은 각종 기념행사와 특집들이 이땅
남녀노소로 하여금 콧등시큰한 감동을 맛보게 한다.

그날의 기쁨과 의미가 필설로 못다할만큼 크고 깊었기에 반백년이 흐른
오늘에도 퇴색은 커녕 하염없이 다시 솟구쳐 반추의 소중함을 뼈속에 느낀다.

그러나 오늘의 뜻이 깊으면 깊을수록 한국인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과거의
회고보다는 미래의 도전, 감정 감상보다는 이성과 합리로 오늘의 무게를
가늠하는 민족의 원숙함이다.

광복을 맞기까지의 수모와 회한이 뼈저렸기에 신이 아닌 인간으로의 분노
와 저주가 몸서리침은 당연하다.

그러나 감정에만 사로잡힌 채로 있기에 50년의 세월은 너무 길고 아깝다.

그 50년간,분단의 불구에도 불구하고 상전벽해(상전벽해)의 변화와 발전을
세계인의 주시속에 결심했음에도 앞으로 헤쳐나갈 항로에 예고된 풍파가
험난해 잠시의 만심과 나태도 설 틈이 없다.

비록 과거를 반추하더라도 뼈아픈 실패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에 대한 자성이 핵을 이룰 때 치유와 재발방지가 기약되고 국가
의 장래도 있다.

50년 세월이 흘렀어도 외세 질곡(질곡)의 책임을 상대에 돌리는 나머지
끝내 자신에 관대하고 싶어하는 관성은 결국 스스로에 득보다 실이 된다.

침략의 책임을 역사의 조류로 돌리는 경제대국 일본의 옹졸함이 못마땅
하기 한량 없으나 그 규탄만으로 대상이 쥐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인정에 인색한 개인이나 집단은 발전에 제약이 따르며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에는 혁신의 길이 열린다.

과오시인 전후처리에 인색한 일본의 한계를 개탄하듯 그들의 협량을 접어
주고 장래를 도모하는 대범성 부족 또한 자탄함이 진짜 금도일 것이다.

우리는 이 감격적 시간을 물보다 피의 진함을 확인하는 데서 머물지 말고
민족역량의 재결집에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

아리랑 합창에 혼연일체가 돼 민족애의 끈끈함을 영탄하는데 머물지 말고
그 잠재력을 미래건설에 승화시키는 완숙을 과시할 계제다.

50년의 반추는 새 50년을 일구는데 밑거름됨으로써 비로소 진가가 있다.

반추란 과오를 되씹어 반복을 예방할수 있어야 비로소 값이 있다.

지난 50년의 부족과 결핍을 앞으로 50년에 벌충하는 이상 더 소중한 것이
없다.

첫째는 질적 보완이다.

속도에 최고가치를 두어야 했던 개발시대의 질결핍을 절대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산업도 건설도 사회도 정치도 내실을 다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원칙이 통하고 규칙이 존중되는 경쟁원리의 사회가 열려야
한다.

누차 반복된 자유화-자율결핍-타율부과의 악순환이 이젠 반드시 단절
되어야 하며 몇몇 개인의 명예욕에 제물이 되는 정치의 맹점이 붕쇄돼야만
지난 50년간 파인 민족분단의 골을 새 50년에 메울수 있다.

광복50년의 진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