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후 <포스코경영연 연구위원>

김영삼대통령이 미국 방문시 재미 과학자들과의 시간을 특히 배려하신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펜을 든다.

고마운 점은 우리나라 최고의사결정자인 대통령이 과학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국내외 과학자들에게 일깨운것이고,걱정되는 점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이 그동안 그릇을 얼마나 키워 왔느냐 하는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이 그동안에도 몇번 바뀌었고,그 바뀐 정책이
연구소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몰라도 실제 과학기술연구소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호흡을 같이했던 필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시하고 싶다.

필자는 고등학교때부터 이과 아닌 문과를 선택했기때문에 과학기술에
대한 조예는 부족하지만,과학기술에 대한 연구태도가 어떠한것인가에
대해서는 늘 생각해 왔다.

본인이 잘 아는 원로 과학자 한분은 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말씀하지만 불 켜놓고 자고 있는 연구소가 아닌 늘 깨어 있는 연구소가
되어야 한다.

특히,과학기술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순교자적 희생이 필요하다.

이러한 희생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지만 아직까지도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이다.

청산가리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가 이 물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이 물체의 분사구성,성질 등은 실험을 통해서 알게되었지만 이 물체의
맛에 대해서는 어느 문헌에서도 나와있지 않았다.

문제는 청산가리의 맛을 알게 되는 순간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이 과학자는 결국 목숨을 건 실험을 하게된다.

스스로 그 청산가리의 맛을 보고 죽겠다고 작정하고 조수에게 부탁하여
유언을 받아쓰게 한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달다"였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철강산업에서의 예이다.

일본이 독일에서 철강기술을 받아들이던 20세기초 일본의 제철소에서
독일의 특수강 제조공법을 연구하기위해 과학.기술자를 독일에
파견했었다.

독일 제철소측은 특수강의 제조에 대한 공정과 기술은 가르쳐 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용강의 온도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용강의 온도를 모르면 자력으로 이 특수강을 제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연수단을 이끄는 과학자는 연수기간이 끝날때가
되어 고민하게 됐다.

결국 연수의 마지막 날 전체공정을 살펴보는 도중 끓는 쇳물에 그의
손가락을 집어넣어 그 쇳물의 온도를 알아내어 이 특수강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실화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는 이야기라고 본다.

첫째 에피소드에서는 그 연구자의 지적호기심과 위험 부담이 부각된다.

연구는 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며 변화에 대한 위험부담이다.

연구자는 수행하는 연구가 얼마나 참신하며 이 연구가 얼마나 실패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늘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연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알고 있는 결과를 합리화시키거나 단순한 지적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연구가 아니라 실패를 생각하고 이것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연구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연구소의 대다수 프로젝트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어는 연구소에서는 1년에 진행된 프로젝트가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보고된다.

과연 이러한 성공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둘째 에피소드에서는 연구자의 책임감과 헌신이 돋보인다.

어느 면에서 연구자의 책임한계는 무한대이며 결국 자기자신의 능력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에,주언지 예산에,어음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평가되기 때문에,시간도 넉넉히,예산도 넉넉히,
목표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잡기 쉽다.

허나 연구는 늘 자신의 전력을 투입해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갖고
시작해야만 가치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연구 프로젝트에는 시범 프로젝트,전시 프로젝트,예비 프로젝트가 없다.

올림픽 육상 100m최종결선을 뛰는 각오로 연구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즉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공부를 해야하고,이러한 일차적 연구결과를 있게 해준
연구소에 대한 헌신의 일환으로 대외홍보,연구결과 발표,특허출원
등의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몇 가지 생각해 보았지만 과학기술개발은 목표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다만 꾸준히 참을성 있게,일관성 있게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