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봉성 <한국개발연 연구조정실장>

올 연말께엔 우리의 1인당소득이 1만달러에 달할 것이라 한다.

4인가족 가정의 경우 1년소득이 평균 3,000만원쯤 된다는 얘기다.

수출입규모도 각각 1,000억달러대로 커져서 세계 주요교역국으로
부상하였으며 조선 반도체 자동차 철강등에선 우리가 세계시장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최소한 선진국이 되는 문턱에는 왔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대형사고들. 그에따라 드러나는
우리 경제사회의 치부,졸속행정,적당주의,비리와 황금만능주의등을
볼때 우리는 심한 부끄러움과 허탈감 회의를 떨칠수가 없다.

이러고도 정말 선진국이 될수 있겠는가.

일전에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크루그만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제국의 고도성장을 심하게 평가절하함으로써 학계에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동아시아의 기적같은 경제성과는 권위주의체제하에서 인위적으로
동원된 노동력과 자본의 축적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조금도 신비스러워할 것이 없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나아가서 이처럼 단순히 생산요소 투입을 확대하여 이룬 경제성장은
멀지않아 한계에 부딪치게 마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시아제국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러면 일본은 어떻게 해서 전후에 경제부흥을 이루고 선진국이
되었나.

크루그만교수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엔 동아시아국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단순히 노동과 자본을 확대투입한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등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임으로써 고도성장을 수십년간 지속할수
있었다고 한다.

크루그만교수의 주장은 반론의 여지가 많다.

일본과는 또 달리 완전히 맨손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한 우리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효율을 따지기 이전에 우선 일자리를 만들고 확대재생산을 통해
파이의 크기를 키워 나가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가 아니었던가.

그러기 위해선 강제저축을 통해서 투자재원조달을 최대화하고 그 배분에
있어서도 정부가 개입할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달러 소득시대를 눈앞에 두고 요즘처럼 대형참사를
연이어 겪고 있는 우리에게 크루그만교수의 주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한다.

우리 경제는 그간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80년대 후반이후 높은 임금과 지가상승으로 인해 우리의 생산체제가
고비용구조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의 향상이나 구조개선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해선 개별기업 차원에서 자동화 기술개발 고부가사업으로의
전환등도 필요하지만 우리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나가야한다.

보다 실질적인 규제완화를 포함해서 말이다.

둘째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경제부문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경제력 집중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 확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마전 외국의 한 언론이 한국특집에서 우리경제를 프랑켄슈타인경제,즉
괴물경제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괴물로 비유된 대기업그룹의 여러가지 경쟁제한 행위와 외형성장만을
목표로한 과도한 투자행위,그리고 거기서 야기될수 있는 부실의 책임을
정부로 떠넘기려는 도덕적 해이등을 꼬집었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지적되는 경제력 집중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앞으로 중지를 모아 나가야겠지만 최선의 방책은 우리의 자유시장경제
틀안에서 공정한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시장의 힘을 통해 개선되도록
하는 것이라 믿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대기업간의 경쟁도 좋지만 실질적인
시장개방을 통하여 외국의 일류기업과의 경쟁도 유발시켜야함은
물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제기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에 대한 시각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대내외여건 변화에 따른 성장산업과 사양산업간의 양극화
현상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조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바람직한 증거이다.

따라서 인건비 비중이 높은 경공업이나 건설 유통등 서비스업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이런 사실을 주지시키고 고부가
사업의 개발이나 업종전환을 지원하여야 한다.

또한 직업훈련등을 확대하여 한쪽에서 방출되는 노동력이 다른 부문으로
원활히 흡수될수 있도록 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주도의 경제운영방식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고 있는 반면 교통 환경 복지
안전등 삶의 질향상에 대한 욕구가 커짐에 따라 그쪽 방면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점이다.

요약컨대 과거 우리경제의 발전을 가져왔던 여러 요소들이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앞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정부부문을 포함하여 우리경제의
총체적인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나가야 하며 그를 위한 새로운 전략과
경제운영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절실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