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생전에 사후의 일을 부탁하고 유언을 남겼다 할지라도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다.

죽은 뒤의 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가령 죽은 사람이 최고권력자였다고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2세(1712~1786)는 "군주는 국가 제1의 공부"이라는
신념아래 시정을 펴서 후세에 프리드리히대왕이라고 불린 계몽전제군주였다.

그는 죽기전에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계몽주의자로 살아온 내게 걸맞게 검소한 장려를 치뤄라.

국민의 헛된 호기심을 위해 구경꺼리로 만들지 말고 죽은지 3일째 되는날
밤에 상수시궁전의 오른쪽 테라스에 묻어라"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조카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는 그의 유해를 포츠담의
군인교회에 안장했다.

그 이래로 이 교회는 프로이센보수주의의 상징이 되고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이 교회에서 국회의 개원식을 화려하게 거행할 정도였다.

제2차대전말기에 히틀러는 이 유해를 포츠담근교의 공군기지 지하실로
이장했고 다시 츄린겐 산속으로 옮겨졌다.

독일 패전후 미군에 의해 말부르크의 엘리자베트교회에 매장되었다가
남독의 헤힌겐교외를 거쳐 동.서독 통독후인 91년8월17일 밤에야 유언대로
상수시궁전에 안장됐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죽은지 205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주석 김일성이 사망한지 만1년이 된다.

그간 북한은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주석과 권력의 총본산인
조선노동당총서기자리를 공석으로 남겨 둔채 "애도"로 한해를 지샜다.

아마도 김일성보다 카리스마가 훨씬 못한 김정일이 그의 카리스마마저
계승하려는 속셈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을 통치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니라 죽은 김일성이라는
말이 나올정도이다.

김정일 스스로도 "나는 늘 수령님께서 하신 "교시"를 되새겨 보며 일하고
있습니다"(94년10월16일)"금년의 농업생산계획은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때
구상하신 계획을 집행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고 말하고 있다.

"부자가 일체"로 김일성의 유훈에 따라 통치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정세아래 언재까지 북한은 "유훈정치"를 계속할수
있을까.

김정일이 국가주석과 총서기에 취임하면 명목은 어떻든간에 실질적으로는
많이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동향이 극히 주목되는 연유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