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무역체제는 일종의 삼각무역체제다.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은 일본으로부터 자본재와 중간재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미국등 선진국에 수출하는 분업패턴이 두드러진다.

최근 이 삼각체제에 균열이 심해지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성장전략을
추구하는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은 불안해 하고있다.

이 체제의 두 핵심축인 미.일 사이에 마찰이 잦고 최근에는 심각한 대결
국면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불협화음은 먼저 외환시장에서 나타났다.

금년초부터 달러대비 엔화의 가치가 급상승을 시작해 한때는 20%나 급등
했다.

그러나 미.일 양국은 급변하는 통화가치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책협조를
전혀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일본을 고사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달러의 하락을 방관하고 있다
는 일본의 의혹은 깊어만 갔다.

한편 엔화의 가치상승으로 아시아에서 달러의 지배적 위치를 축소하고
엔화의 사용을 늘리려는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강화됐다.

아시아권의 중앙은행들은 엔화의 보유를 늘렸고 일본도 엔화표시 무역
거래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이를 "엔블록"의 구축이라고 보는 성급한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지금과 같이 대아시아 무역에서 흑자를 유지하는 한 엔화
의 유출부족으로 "엔블록"의 형성은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엔화의 상승이 아시아권에 대한 일본자본의 진출을 더욱 촉진할 것은
분명하다.

경쟁력이 약화되는 수출기업들이 공장의 해외이전이나 부품생산의 국제화
로 활로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은 일본의 해외투자가 공업화를 촉진하고 수출을
늘린다는 입장에서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출기업의 이전은 동시에 대미무역마찰의 요인도 이전하는
양면성이 있다.

이들은 아직 미국으로부터 시작개방의 압력을 본격적으로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미.일간에 최근 격화된 자동차및 부품시장의 개방을
둘러싼 무역분규는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닐수 없다.

이를 바라보는 동남아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일방적 보복관세조치
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음번에는 그들 차례일수도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규를 겪는 일본의 행로에 대해서는 두개의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와 같이 아시아권의 결속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사람들은 이런 마찰을 계기로 일본의 아시아화가 가속될 것으로 본다.

그들은 일본의 행로를 열어주는 배려로 최근 EAEC(동아시아 경제협의체)에
호주와 뉴질랜드도 가입할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이들을 받아들이면 아시아인만의 EAEC라는 인종적 편견이 희석돼 일본의
참여가 용이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반면 아시아의 결속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싱가포르의 리관유 전총리는 일본의 미국에 대한 자극을 피하고 아시아
시장개방에 앞장서 줄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아시아시장의 개방부진에 환멸을 느끼면 결국 유럽과 자유
무역협정을 추진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북대서양 자유무역지대(TAFTA)의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도 미국이
우루과이라운드(UR)막바지에 아시아카드로 유럽연합(EU)에 압력을 넣었듯이
이번에는 EU카드로 아시아의 시장개방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사국인 일본에서도 아시아화에 대한 논의는 엇갈린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아시아에서 벗어나 구미선진국 대열에 선다"는
탈아입구정책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제 아시아지역은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일본의
무역과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대아시아무역은 90년대초에 북미무역을 능가했고 현재는 40%에
달해 미국(30%) 서유럽(17%)을 상회하고 있다.

이런 무역 투자 통화측면의 아시아 경제로의 접근과 세계경제의 지역화
경향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탈구입아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아시아국가와 발전단계의 격차,그리고 대전전에
시도했던 대동아공영권실패의 교훈을 들어 아시아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번 무역분규는 결국 양측이 양보하는 선에서 타결되어 무역전쟁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와같은 경제적 마찰이 빈발할수록 양국간 불신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같이 아태지역의 무역자유화를 추진하는
지역경제협력체는 두 지도적 국가의 마찰때문에 표류하게 될 것이다.

금년의 APEC회의는 오사카에서 개최될 예정이니 의장국인 일본의 입장은
난처하다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