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 <국립전주박물관 학예관>

영어 조기교육의 열풍이 일어난지 이미 여러해가 지났다.

국위선양과 한국을 홍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미의 사절''을 뽑는
행사가 엄청난 경비를 들여 대대적으로 개최된다.

몇달전만해도 세계화 국제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언론매체를 통해
많은 토론이 이뤄졌다.

이렇듯 외국의 문물을 배우려는 노력이 있고 반대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외국에 알리기 위한 많은 행사가 있다.

이 두가지는 국민 모두가 부지런히 추구해 나가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젊은 이들은 우리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외국 것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된데는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가정에서의 생활교육과 학교에서의 역사.문화교육이 과연 제대로 되어
있는지. 아이 스스로가 관심을 갖기전에는 우리 교육을 통해 우리 것을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사책을 보면 문화.미술부문은 각장의 뒤에 마치 부록처럼 몇쪽
붙어 있다.

이같은 정치 경제 사회중심의 역사교육으로는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신적 사상적 종교적 배경에서 옛 사람들이 선호하던 미술품과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생활용품및 용기들이 제작되었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눈에 드러나는 사실에만 치중하여 내면적인 정신세계를 등한시
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옛것과 옛사람들의 의식과 사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현재의
우리를 바로 바라볼수 있을 것이다.

옛것은 옛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과 동일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위에서 우리것을 알리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외형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학 미술 음악등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있어야 한다.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에서 지난해 열린 동양도자기에 관한 회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세계 각국 학자들이 중국 한국 일본의 도자기를 연구.발표.토론하는
회의였는데 중국은 도자기의 종주국답게 적당히 발표하여도 동양도자기사
에서는 최고의 위치였다.

일본 도자기는 우리 도자기보다 8백년가량 뒤늦게 만들어지기 시작
했음에도 어느 틈엔가 중국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참석전에 예상은 했지만, 토론의 현장은 마치 국력과시 전쟁터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긴장감 도는 분위기였다.

중국보다도 먼저 일본에 도자기문화를 전파한 우리의 역할을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었다.

발표전날 거의 밤을 새워 일본 도자기보다 앞서 발달한 예술성 높은
작품을 몇 점 추가하여 준비해간 슬라이드를 재편성하였다.

모든 지식과 경험을 모아 조선도자기의 제작배경과 변천과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예술혼을 슬라이드를 통해 설명하였다.

발표후 많은 사람들이 조선 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질문을 해왔다.

더욱이 한국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는 하버드대학원생도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문헌을 소개해 주었다.

이제는 구호로만 세계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정책적인 차원에서 우리
문화와 미술을 외극에 알려야 할 때다.

서양의 박물관 한 구석에 진열되어 있는 초라한 한국 유물들과 중국과
일본의 아류쯤으로 간주되고 있는 한국 미술에 대한 수모를 더 이상
묵과할수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해외학술활동이 요구된다.

해외 학술활동에 대한 제재나 통제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다.

이대로 머물러 있다간 문화면에서 우리나라는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이며,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은 사장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다양한 외국문물을 체험하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우리 것을 전하면서
상호 비교해 보면 일거양득 아닐까.

제 생김새도 모른채 남의 얼굴만 들여다 보는, 모순된 행태는 지양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