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한.러시아 극동시베리아 협력
제4차 합동회에 장치혁회장을 비롯한 100여명의 기업인과 함께 참가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르쿠츠크라는 지명은 우리 귀에 설지만 바이칼호하면 쉽게 알만한 곳인데
이르쿠츠크는 바로 이 바이칼호를 남단에 끼고 있는 이르쿠츠크공화국의
수도로 시베리아의 한 중앙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의 관념속에서 멀고도 먼곳.

그래서 가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진 시베리아속의 도시 이르쿠츠크였지만
약 100여명의 한국 기업계 대표를 태운 KAL전세기는 서울을 출발한지 불과
4시간30분여분만에 그곳에 도달할수 있어서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지역들
보다 지리적으로 참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다 가깝다 하는 것은 지리적 거리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멀고
가까움을 결정하는 것은 마음의 거리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면 한국과
러시아간 국교정상화후의 변화는 양국 국민간의 마음의 거리를 많이 좁혀
놓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회의를 통해 실감했다.

이번 제4차 한.러 합동회에는 러시아측에서 200여명의 기업인과 극동
시베리아지역 11개 공화국 대표들이 대거 참여하는 열의를 보여 러시아가
한국을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으며
때로 도에 넘칠 정도의 환영과 환대를 받은 한국측 대표단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에 큰 심적인 부담감마저 갖게 될 정도였다.

합동회의를 마치면서 한.러시아 양측은 경제협력을 촉진키위한 공동성명서
를 합의 발표하였다.

<>가스개발등 주요 프로젝트시행을 위한 예비 조사의 실시 <>무역및 투자
증대와 기술협력 촉진을 위한 정보센터의 설립 <>나홋카에 한.러시아간
테크노파크 설립 검토 <>그리고 서울과 이르쿠츠크간의 직항노선 개설의
각국 정부에의 건의 등이 골자다.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 측은 <>자동차 조립공장 설립 <>목재개발 <>석유화학
종합단지 설립 <>가스 개발 <>발전시설및 도로와 항만, 그리고 관광산업등의
개발및 시설등을 투자 유치대상으로 제시했다.

또 기왕에 개발해놓은 산업기술을 상품화 하는데 한국기업이 적극 참여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많은 지하자원과 인구, 비옥하고 광활한 토지,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은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큰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프라의 태부족과 관련산업의 미비, 방대한 자금소요, 그리고
외국인 투자 유치및 그 보호를 위한 법적 제도의 미비는 투자협력이나 사업
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대형프로젝트는 장기적 안목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됐다.

다만 러시아 아카데미 산하 20여개 연구기관장과의 개별회담 과정에서
알수 있었던 것은 산업기술협력사업은 비교적 쉽게 실현될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한 연구원에서는 손전등 크기의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암치료기와, 간단한
약품처리로 폐수를 정수화 할수 있는 기술을 적은 자본으로 산업화 할수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유형의 협력사업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 산업기술 협력 분야가 현단계에 있어선 가장 현실적
인 손쉬운 경제협력 대상이 아닌가 여겨졌다.

바이칼호의 수려한 경관을 이용한 관광산업 또한 장래성 있는 협력산업분야
로 생각되었다.

바이칼호는 그냥 떠마셔도 좋은 맑은 물과 함께 참으로 수려한 경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는 울창한 산림과 맑은 물, 그리고 한없이 상쾌한 공기와 비옥한
땅을 가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렇듯 훌륭한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제는 피폐
상태에 있고, 그들의 경제가 언제쯤 정상궤도에 진입할수 있을지 조차 예측
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고 보니, 한 정치지도자의 잘못과
한번 잘못 선택된 정치이념과 제도가 한 나라의 역사발전과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새삼 실감케 됐다.

러시아는 이제 전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던 초강대국으로서의 자리에서
밀려나 국민들의 기초적인 의식주 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한 우리대표단 일행을 국빈과도 같이 민속무용단의
공연으로 맞이해 주고, 경찰차들이 앞서 모든 차량을 통제시켜 가며 길안내
를 하는 등의 대접을 받고 보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이러한때에 쓰이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때 우리나라의 여객기가 그네들의 영공을 조금 잘못 지나쳤다 하여
전투기로 미사일 공격을 하던 일은 옛날의 이야기로 묻어버리고 이제
전세여객기를 러시아 하늘에 날리며 상호 공영을 위한 경제협력 방향을
논의할수 있게끔 우리 경제가 커졌고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으니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