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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사와 LG경제연구원은 ''세계화 기업들''이란 시리즈를
공동기획, 지난 3월부터 연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미국 호주기업들의 세계화전략이 소개된데 이어
이번주부터는 세계화에 앞서가는 유럽기업들의 움직임이 소개된다.

유럽 현지취재는 본사 하영춘기자와 강선구LG경제연 선임연구원이
담당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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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최대이자 세계 5대 종합전기전자메이커" "반도체.산업용조명기구등
전기.전자제품에서부터 의료기기 고속열차등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전자제품은 모두다 만드는 기업" "세계 1,2위를 다투는 엄청난
연구.개발(R&D)투자".

독일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인 지멘스에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그러나 독일뮌헨에 위치한 지멘스본사건물을 겉에서 보면 이런 수식어를
실감할수 있는 특징을 발견할수 없다.

그러나 건물안으로 들어서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서부터 단순 메모지에 이르기까지 "TOP
SIEMENS"나 "TOP"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쓰여있다는 점이다.

이 공통점을 발견하면 처음엔 실망감이 앞선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우리나라 기업들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정상(TOP)을
향하여"라는 식의 상투적 표어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알고 나면 TOP이란 단어는 지멘스가 추진하는
세계화전략의 요체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TOP이란 Time Optimized Process (시간효율 극대화과정)의 약자이다.

한마디로 소비자욕구파악 신제품개발 생산 조직 경영 기업문화등 모든
부문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그로스 경제조사부박사)

시간효율 극대화과정.

이미 1850년대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와 영국 런던에 사무소를 개설할
정도로 세계화에 관한한 앞선 경험을 자랑하는 지멘스의 최근 세계화
전략은 이 한마디로 함축된다.

세계 1백여개국 소비자의 욕구를 빠른 시일내에 파악,단기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신제품을 빨리 시장에 내놓자는게 TOP의 골자이다.

이른바 스피디한 경영을 통해 세계화시대를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이 운동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능한 싼 가격에 뛰어난 품질의 상품을 다른 경쟁사보다 빨리
공급하는게 세계화시대 승리의 첩경"(피에르그룹회장)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에따라 지멘스의 경영스타일 연구개발 생산공정 판매과정 현지법인
운영등의 초점은 모두 시간절감에 맞춰져 있다.

우선 신제품 개발과정을 보자.불과 15년전만해도 지멘스의 상품중
5년이내에 개발된 신제품은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3분의 2이상이 5년이내에 만들어진 신제품이다.

반면 10년이상된 노후상품은 15년전만해도 22%에 달했으나 지난해엔
9%수준으로 격감했다.

전자부품그룹의 경우 지난 93년1월엔 신제품 하나를 개발하려면
무려 65개월이나 걸렸다.

고객의 욕구를 파악한지 5년반이 지나야 상품이 시장에 나올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5년이면 고객의 욕구도 이미 변해버린 뒤.그러던것이 93년
10월엔 32개월로 단축됐다.

이렇게 신제품 개발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지멘스가 자랑하는
엄청난 연구개발(R&D)투자덕분이다.

지멘스는 지난해 연구개발비로만 75억8백만마르크(약4조1천억원)를
쏟아 부었다.

매출액의 9%에 달하는 수준이다.

세계 각국에 자리잡은 연구개발인력은 전체 종업원(38만명)의 13%인
4만8천명에 이른다.

이중 1만3천여명이 해외에 상주하고 있다.

제품생산과정도 마찬가지다.

독일에 있는 보촐트( Bocholt )공장은 90년대들어 생산라인을 완전히
교체,6개월마다 신제품을 생산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됐다.

그결과 지난 4년간 생산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개가를 올렸다.

아우스부르크의 퍼스널컴퓨터(PC)공장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전까지만해도 42일 걸리던 소형 메인프레임컴퓨터의 생산시간을
불과 12일로 단축했다.

27개에 달하는 해외자회사와 43개에 이르는 해외현지공장의 경영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현지 소비자의 욕구는 현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가장 잘 안다"
(람프경제조사부박사)는게 지멘스의 원칙이다.

따라서 지멘스의 모든 해외법인들은 철저한 독립적 운영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해외에 신규거점을 마련하는 것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일단 거점마련이 결정되면 어느 회사보다 빨리 진출한다.

지난 91년말 체코의 최대 중공업그룹인 스코다사와 합작할 때도
그랬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스위스와 스웨덴 합작회사인 ABB가 동유럽특수를
겨냥해 스코다합작에 나섰지만 지멘스가 이미 합작을 성사시킨 뒤였다.

최근 세계화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중국에 다국적 기업으로선 가장
많은 수준인 20개의 현지사무소와 공장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멘스의 이런 시간효율극대화전략은 세계시장에서의 수익증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지멘스의 독일내 매출액과 신규수주액은 각각 3백58억마르크와
3백51억마르크로 전년에 비해 4.0%와 7.2% 감소했다.

그러나 그룹전체의 매출액과 수주액은 각각 8백46억마르크와 8백84억
마르크로 전년보다 4.0%와 5.0%증가했다.

바로 독일을 제외한 해외시장에서의 비약적인 수익증대에 따른 탓이다.

"독일을 가로지르고 있는 ICE를 꼭 타보라.비록 한국 경부고속철도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시속이 3백10km나 된다. 그러나 일단 승차하면
그 속도를 전혀 감지할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다.

그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속도를 더욱 빨리하는게 우리의 목표다.
TOP운동도 마찬가지다"(람프박사).

ICE와 같은 무서운 속도를 무기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