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가 요즘 상무부를 아예 폐지하고 모든 통상기능을 무역
대표부(USTR)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가칭 KTR같은 강력한 무역대표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건 아닐까요.

<>김차장=한국의 통상환경은 공세적인 미국과 전혀 다릅니다. 굳이 미국
모델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얼마전 일입니다만 미국이 일본의 자동차수입시장이 폐쇄적이라는 이유로
강력한 무역보복조치를 발동한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쌍무간 무역마찰을 지양하고 모든 문제를 다자간 협의의 테이블로 끌어
들이자는게 WTO가 새로 발족한 취지인데, 이렇게 쌍무적인 통상공방이 기승
을 부리게 되면 WTO의 입지가 좁아지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김차장=그런 의구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미.일간의 자동차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일 두나라는 결국 서로 상대방을 WTO에 제소하는 것으로 낙착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들은 종래의 GATT체제 아래에서는 쌍무적 문제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WTO체제 아래서는 모든 국가간 통상이슈가 "국제 규범"
에 따라 다뤄지고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지요. 미.일자동차마찰 같은 것도 WTO
사무국 차원에서 조정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분쟁해결 기구에서 "판결"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앞으로
WTO의 위상과 기능은 갈수록 높아지고 중요해질 것이란 얘깁니다.

-미.일 두나라는 모두가 경제강국이니 그럴 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설령 한국이 제소한다고 해도 어디 공평하게 처리되겠습니까.

미국이 올초 한국이 농산물 검역과 식품 유통기한 등에서 불공정한 장벽을
쌓고 있다며 WTO에 일방적으로 제소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한국은 전전긍긍하고만 있는 상황이지요.

<>김차장=그럴수록 한국같은 나라들이 WTO체제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만약 일본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무역압력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미국은
자국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문을 위해 한국에도 일방적인 압력을 가하게
될 겁니다.

-김차장께서는 그동안 상공부장관 상공부제1차관보등으로 통상협상 테이블
을 숱하게 지켜오셨습니다.

통상현안을 처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보람을
느끼셨던 일은...

<>김차장=제가 관료생활을 시작한게 70년인데 그 때는 섬유분야 협상이
거의 전부이다시피 했습니다.

70년대엔 한국 수출의 40%이상을 섬유가 차지했었고, 따라서 대미쿼터
증량여부가 수출 전체의 사활을 좌우하다시피 했지요.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시장개방협상이 어려운 작업이었고요. 특히 80년대
하반기가 되면서부터는 농산물등 새롭게 개방해야 될 분야가 대두되는
바람에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습니다.

국내산업 기반을 붕괴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단계적인 개방계획을 짜고
이를 협상 상대국들에 설득시키느라 이만 저만 고생스럽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와중에서 88년 미국의 슈퍼3백1조 문제가 터져나오는 바람에 더욱
진땀을 흘려야 했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김차장을 일컬어 "천운을 잘 타고난 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관운도 좋았고, 한국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첫
"해외 고관"이 되는 기회도 안게 되셨으니 말입니다.

<>김차장=저는 제2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게 됐으니까요.

WTO라는 새로운 세계에 가서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만큼 긴장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어쨌든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저 자신도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무차장 월급이 꽤 많다면서요.

<>김차장=연봉이 20만달러를 약간 넘습니다. 세금은 완전 면제되는 혜택을
받지요.

승용차 같은 것들도 면세로 구입할 수 있고요. 제네바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고 합니다만 충분히 일할 여건은 조성돼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공무원 생활은 20년에 조금 못미치는 바람에 연금
수혜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만.

<>김차장=사실입니다. 상공부 재직기간중 민정당 전문위원으로 2년반동안
파견 근무하는등 공직연한에 가산 안되는 곳에서 일을 한게 좀 있어서 19년
6개월만 공무원 근무한 것으로 계산이 나오더군요.

그 바람에 퇴직금만 일시금으로 한 1억원 받았습니다.

-WTO 사무차장을 연임하시게 되면 6년을 제네바에서 지내셔야 하는
셈인데, 도중에 사무총장직에 재도전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김차장=아직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무차장으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아래 제네바로 향할 것입니다.

-제네바 부임에 대비해 불어를 새로 배우셨다면서요. 사무차장으로 낙착된
지난 3월이후 어떻게 지내오셨습니까.

<>김차장=준비해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아 바쁘게 지냈습니다. 우선
프랑스어를 배우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대학시절 한 2년간 불어를 배우긴 했습니다만 많이 잊었거든요. 지난
한달동안 프랑스 교수를 집으로 불러 하루에 한시간씩 배웠습니다.

WTO에서의 업무야 영어로 하겠지만 제네바가 불어권 도시인만큼 프랑스어를
하지 않으면 일상 생활에서의 질이 떨어질 것 같아서...

컴퓨터를 직접 다뤄야 할 것 같아 컴퓨터공부도 했습니다. WTO에서 제공
되는 승용차이외에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쓸 차도 직접 구입해 뒀고요.

집에서 쓸 차로는 한국산차를 장만했고, 업무로 사용할 차는 유럽산으로
했습니다.

제네바에서의 살림을 도와줄 가정부도 한국사람으로 미리 구했고요.

-이번에 부임하시게 되면 몇번째나 해외생활을 하시게 되는 겁니까.

<>김차장=어린 시절 아버님(고김유택전경제부총리.한은총재)을 따라
외국에서 잠시 살았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대학원을 미국에서 다녔지요.

교수생활도 잠시 했고요. 72년 외교연구원 전문위원으로 귀국한 이후에는
쭉 국내에서 생활했습니다만 그동안도 1년에 적게는 두달, 많을 때는 넉달
정도를 각종 해외출장을 다녔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따지면 제 삶의 한 절반정도는 외국에서 보낸 셈입니다.
분명한 건 제가 한국의 공직자로는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지요.

작년말 대한항공에서 제가 46번째 "밀리언 마일러(1백만 마일이상을 여행한
사람)"로 선정됐다며 기념트로피를 줬는데, 공직자중에선 처음이란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대한항공만 그만큼 탔으니 다른 항공사를 이용한 것 까지 합치면 그 배이상
될 겁니다.

그것도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한 86년 이후 것만 따져서
말입니다.

<정리=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