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우리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북.미간 경수로
회담이 마침내 완전 타결됐다고 한다.

이번 합의는 북한이 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를 선언한지
꼭 2년 3개월만에,그리고 94년10월21일 북.미 제네바합의 이후 근 8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이번 합의내용에 한국이 요구해온 사항들이 대부분 반영됐다는 점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북.미는 합의문안에 경수로 노형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선정하기로 규정함으로써 한국표준형모델을 사실상 명문화한 것이다.

경수로의 설계 제작 시공과정에서 한국의 중심역할을 보장한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다만 최종 합의서에 "한국형"이라고 못박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북.미 경수로합의는 주계약자 경수로모델등과 같은 총론적인 원칙만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앞으로 경수로사업진행과 관련,구체적인 사안들을
놓고 KEDO와 북한간에 다시 힘겨운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북한으로서는 한국기업이 북한에 한국형경수로를 짓는다는 부담때문에
향후 사업추진 과정에서 더 많은 경제적 실리를 얻거나 한국의 정치적
입장을 어렵게 만들려는 시도를 되풀이 할 게 분명하다.

또 북.미 협상과정에서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온 협상태도로 미뤄볼때
경수로공급협정체결이라든가 사업추진이 별 탈없이 진행될지도 미지수이다.

북한이 어떤 숨은 속셈을 갖고 이번 협상에서 한국의 요구를 수용했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그렇더라도 북.미 합의는 남북대화의 길을 다시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음 과제는 남북대화다.

한국 정부와의 대화를 끈질기게 기피해온 북한으로서는 이번 경수로
합의를 계기로 한국과의 대화를 피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북한은 이제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응함으로써 이번 합의의 조속하고
차질없는 실천과 함께 쌀 문제와 기타 경제협력사업등 다른 현안논의를
진전시킬 길을 터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한시바삐 대화의 마당에 나와야 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협력을 포함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뿐만아니라 우방인
미.일과의 관계재정립을 위해서도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경수로합의 이후 미국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서두를게 확실시
되기때문에 정부는 미.일과 대북입장을 적절히 조율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당사자
원칙과 북.미 북.일관계를 효율적으로 조화시킬수 있는 세련되고 빈틈없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미국 일본도 이번 합의이후 북한과의 연락사무소개설을 위한 대북접촉이나
수교협상 속도를 독자적으로 조절할게 아니라 남북관계 진전상황과 보조를
맞춰 줄것을 당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