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배달된 조간신문을 가득 메운 지자체 선거 출마자들의 크고
작은 사진 틈 새로 보일듯 말듯한 해외 토픽 하나와 육감적인 여인의
사진 하나가 유독 시선을 잡아 당겼다.

해외 토픽은 러시아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58.3세로 낮아졌다는
내용이었고,사진은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더 "95미스 가슴대회"의
한 장면이었다.

냉전의 종식이후 러시아 우크라이나등 옛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전 보다 못살게 되었다는 말은 들어 왔지만,오늘날 러시아
남성의 평균 수명이 8년전인 87년의 64.9세 보다 6세나 낮아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와함께 자살및 암 발생건수는 증가일로에 있고,결핵 환자 또한 30,
40년 전의 서방 선진국들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하니,나라와 국민의
꼴이 가엾게 되었다.

러시아가 다른 나라들보다 형편이 낮다는 것이 그정도이다.

미인대회도 아니고 하필 가슴 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해외구경을
시켜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이해할수 없지만 그러한 공개적인
성적유회를 통해 삶에 지친 사람들의 억압된 불만을 다소라고
해소하려는 게 아닌가 하여 오히려 희생양이 된 우승자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91년 겨울에 소련을 방문하여 처음 본 모스크바공항은 해방 직후의
서울역 대합실이 저 정도였겠지 할 정도였다.

무표정한 세관원은 시간을 끌다가 말보로 담배 한 갑을 받고나서야
우리일행을 통과시켜 주었다.

물자의 부족이 극심해서 외국인들도 호텔에서 커피를 구경하기가
어려운 때였다.

듣던대로 한밤중에 호텔 방으로 전화가 걸려오고 잠시후 나이 많은
여자들이 나타나 통하지도 않는 말과 짧은 영어로 무엇이든 팔 것이
있으면 팔라고 "세일"을 되풀이하던 광경을 잊을수 없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줄 선 곳만 보면 무조건 줄을 선다고 했다.

물건이 동이 나서 줄이 해산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무턱 대고 그렇게
줄을 서서 무엇이 되었든 무조건 사두는 것,이른바 소련식 사재기만이
굶어 죽지 않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물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비효율적 유통체계로 인해 농산물들이 원산지에서
썩어 가도 도시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고르바쵸프의 개방과 개혁의 덕으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제일 먼저 고르바쵸프를 원망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스탈린 시대까지 들먹이며 개방이후 고르비때문에 살기가
나빠졌다고 불평했다.

개방전에는 그래도 먹고 사는 것과 의료 교육이 보장되었다.

남자들은 60에,여자들은 50에 은퇴를 하고 연금을 받는 생활을 했으며
"다챠"라는 텃밭이 달린 도시 근교의 별장 생활을 즐길수 있었다.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사람에 의하면 요즘은 물자는 많은데 인플레가
극심하기 때문에 물건을 살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물교환식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내 놓고 필요로
하는 다른것 하고 바꾸어 가는 식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주택사정은 더욱 악화돼 전에는 한 아파트안에 3,4세대가 살던 것이
요즘에는 7,8세대가 사는 경우가 흔하다.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도 꽤 초라하다.

유출된 원유가 얼었다가 녹아 흘러 내리기 시작했으니 대양이 심가하게
오염될 것이라는 뉴스며,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체르노빌 같은 원전
사고의 위험성 똑같은 지진을 겪어도 일본은 자기네 백성을 성심 성의껏
구하지만 그렇지도 못한 나라,이제는 지구촌에 부담이 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나라가 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만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6.25를 겪고 외국의 원조로 살아가야 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 외국의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며 서방식 자원봉사와
사회복지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는 처지이다.

미국에서는 러시아에 원조 물자를 보내면서 필요한 사람에게 잘 전달
되도록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러시아인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의 오늘을 보면서 나라가 잘돼야 국민도 복을 누리게 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