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3학년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그전까지만해도 아버지와
나는 무척이나 가까운 부자지간이었다.

주말이면 지금의 영동대교밑 뚝섬 유원지에 나가 보트놀이도 하고 서울
운동장 야구장에 가서 전국 고교야구대회나 몇팀 안되는 성인야구구경도
꽤 즐겨 다녔다.

그렇게 어린시절 관람의 즐거움을 맛본 덕에 지금까지 프로야구를 보는
일은 나의 많지 않은 즐거움중의 하나이다.

시간적인 여건도 여의치가 않고 운동장을 직접 찾자니 관람객이 대부분
젊은층이라 선뜻 야구장에 갈 생각이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1년에 두세번
은 가족들과 간식을 준비해서 잠실야구장 중앙석 제일 높은 곳을 찾곤 한다.

이런 생활은 단순히 야구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세상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대학준비중이고 둘째는 금년에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셋째는 과학고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일찍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기에 아이들이 어렸을때부터
형편보다 일찍 자가용을 마련하여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이러한 여행속에서 우리가족은 공통적이면서 특별한 관심분야를 찾아내게
되었다.

그건 다름아닌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즐기는 것이다.

내가 현대전자산업(주)에 제직당시 동료들이 이미 나의 식도락적 자질을
인정한바 있었고 지금도 가끔씩 만나 그것을 재주라며 들먹이곤 한다.

무엇이든 맛있다는 소문난 곳을 알게되면 그곳을 찾아가 평가해보고 정말
소문대로라고 생각되는 곳은 기회가 있는데로 찾곤 한다.

이런 연유로 아이들도 나를 닮아 은연중에 식도락가가 된듯 싶다.

시시때때로 계동에 있는 해장국집에 가자든지, 오장동 냉면을 먹자든지,
호화반점 짜장면을 먹고싶다는 등 주문을 한다.

이럴때 특히 아내는 분위기를 더욱 돋구어준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족은 안가본집은 그렇다 하더라도 장안에 소문난
음식점은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계동 헌법재판소 입구의 해장국집이 단골집이다.

여기 해장국은 우리집에서 외식할때면 으뜸으로 꼽는 메뉴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자기생활에 바빠지면서 같이 할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때면 나는 이를 달래기 위해 공상을 해본다.

셋다 나같은 식도락가 배필을 빨리 만나 다섯이 아닌 여덟이, 아니 장차
3세까지 식도락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