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94) 제3부 대옥과 보채, 영국부로 오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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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채 아버지는 보채에게 어릴적부터 글공부를 시켰으나 보채의 공부가
깊어지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오빠 설반이 개망나니가 되어 어머니 속만 썩이자
보채는 글공부도 포기하고 어머니 옆에서 일을 도우며 바느질을 주로
익혔다.
설반은 글공부를 한적이 별로 없어 겨우 자기 이름 자나 쓸 정도여서
궁중 물품을 조달하는 일은 대개 밑에 있는 집사들이 맡아 처리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장사에 어두운 설반을 속여 먹는 것이
다반사여서 수입이 점점 줄어들기만 하였다.
그제서야 설반은 자기가 직접 장안으로 가서 호부(요즈음의 상고부)에
들러 그동안의 회계장부를 정리한 연후에 새 건수를 얻어가지고 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럴 즈음에 풍연 살해 사건이 다시 송사되었고 설반은 장안으로
도망을 갈까 어쩔까 하다가 거짓 장례까지 치르는 소망을 벌인끝에
겨우 사건을 수습하고는 부랴부랴 식구들을 데리고 장안으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풍연 살해 사건을 서기의 계책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마무리한
우촌은 먼저 경영절도사 왕자등에게 생질인 설반에 관한 재판건은 잘
처리되었으니 안심하시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었다.
사실 재판 도중에 왕자 등이 우촌을 직접 한번 찾아와서 송사에 걸려
있는 설반이 자기 생질이라는 말을 슬쩍 흘린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촌이 서기의 계책대로 재판을 마무리할수 밖에 없었
는지도 몰랐다.
설반은 이제는 장안으로 올라가보았자 호부에 들를 일도 없게 되었
으므로 될수 있는대로 천천히 여행을 하여 두달 후에야 장안에 도착
하였다.
장안으로 들어서니 외삼촌인 왕자등이 구성통제(아홉개의 성을 통솔
하는 장관)로 영전이 되어 변경 시찰차 장안을 떠났다는 소문이
들렸다.
설반은 자기를 간섭할 사람 하나가 장안을 떠났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설반의 식구들은 장안에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20여년 동안 관리인
에게만 맡겨두고 거기서 살아본적이 없었으므로 일단은 친척들이 사는
영국부로 들어가 있기로 하였다.
영국부 이향원에 숙소를 정한 설반의 식구들은 차츰 영국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익숙해져 갔다.
그러자 설반의 방탕한 기질이 다시 되살아나 술과 계집과 관화(꽃을
보고 즐기며 여흥을 일삼는 놀이)와 도박에 빠져 이전보다 더 형편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 혼자 밖으로 돌며 그러는 것이 아니라 가씨댁 아이들까지 물들게
하여 끌어내었으므로 영국부 어른들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8일자).
깊어지기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오빠 설반이 개망나니가 되어 어머니 속만 썩이자
보채는 글공부도 포기하고 어머니 옆에서 일을 도우며 바느질을 주로
익혔다.
설반은 글공부를 한적이 별로 없어 겨우 자기 이름 자나 쓸 정도여서
궁중 물품을 조달하는 일은 대개 밑에 있는 집사들이 맡아 처리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장사에 어두운 설반을 속여 먹는 것이
다반사여서 수입이 점점 줄어들기만 하였다.
그제서야 설반은 자기가 직접 장안으로 가서 호부(요즈음의 상고부)에
들러 그동안의 회계장부를 정리한 연후에 새 건수를 얻어가지고 와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럴 즈음에 풍연 살해 사건이 다시 송사되었고 설반은 장안으로
도망을 갈까 어쩔까 하다가 거짓 장례까지 치르는 소망을 벌인끝에
겨우 사건을 수습하고는 부랴부랴 식구들을 데리고 장안으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풍연 살해 사건을 서기의 계책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마무리한
우촌은 먼저 경영절도사 왕자등에게 생질인 설반에 관한 재판건은 잘
처리되었으니 안심하시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었다.
사실 재판 도중에 왕자 등이 우촌을 직접 한번 찾아와서 송사에 걸려
있는 설반이 자기 생질이라는 말을 슬쩍 흘린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촌이 서기의 계책대로 재판을 마무리할수 밖에 없었
는지도 몰랐다.
설반은 이제는 장안으로 올라가보았자 호부에 들를 일도 없게 되었
으므로 될수 있는대로 천천히 여행을 하여 두달 후에야 장안에 도착
하였다.
장안으로 들어서니 외삼촌인 왕자등이 구성통제(아홉개의 성을 통솔
하는 장관)로 영전이 되어 변경 시찰차 장안을 떠났다는 소문이
들렸다.
설반은 자기를 간섭할 사람 하나가 장안을 떠났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설반의 식구들은 장안에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20여년 동안 관리인
에게만 맡겨두고 거기서 살아본적이 없었으므로 일단은 친척들이 사는
영국부로 들어가 있기로 하였다.
영국부 이향원에 숙소를 정한 설반의 식구들은 차츰 영국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익숙해져 갔다.
그러자 설반의 방탕한 기질이 다시 되살아나 술과 계집과 관화(꽃을
보고 즐기며 여흥을 일삼는 놀이)와 도박에 빠져 이전보다 더 형편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 혼자 밖으로 돌며 그러는 것이 아니라 가씨댁 아이들까지 물들게
하여 끌어내었으므로 영국부 어른들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