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산업의 해외 생산시대가 본격적으로 눈앞에 펼쳐지게
됐다는 소식이다.

현대전자가 13억달러를 들여 미국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대우전자도 프랑스에 2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공장을 건설키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또 삼성전자도 미국에 현대와 비슷한 규모의 반도체공장을 세우기로
방침을 굳혔다는 것이다.

현대와 삼성의 미국진출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시장인 미국에 거점을
마련함으로써 97~98년부터 본격 형성될 64메가D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회사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같은 규모의 미국투자계획을
세운 것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의식을 보는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이에 비해 대우가 프랑스에 공장을 짓기로 한 결정은 부가가치가
높는 비메모리 반도체공장이라는 점과 해외투자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할수 있겠다.

우리 반도체회사들이 해외공장 건설을 통해 얻을수 있는 효과는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효과는 현지의 연구개발능력을 생산기술과 접목시킬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연간 1,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반도체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연구.개발.생산을 일원화할 경우 효율성면에서
일본 등의 경쟁국들을 누르는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또 통상마찰 요인을 줄이기 위해서도 현지생산은 불가피하다.

툭하면 미국으로부터 높은 덤핑마진율 판정을 받아 반도체수출에
애를 먹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10여년의 일천한 역사에 비해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삼성전자가 2000년대 "꿈의 반도체"로 불리는 256
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내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무엇보다도 기술구조가 2중적이라는
큰 약점을 갖고 있다.

제조기술은 최고 수준이지만 설계와 기초 물성기술은 창피할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오늘날의 다양한 수요에 맞추려면 제품을 다양화할수 있는 설계기술
확보와 반도체의 성능을 향상시킬수 있는 기초 물성연구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또 선진국들이 최근 기술이전을 극도로 회피한다는 것도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미.일에 반도체장비의 80%,원부자재의 50%를 의존하고 있으며 생산비의
12%를 특허사용료로 지불할만큼 기술력이 달리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 반도체산업이 과거와는 다른 환경에서 외국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시설 투자도 중요하지만 자생력을 보유하기 위한 과감한 기술투자가
더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우리 반도체회사들은 바로 이점을 염두에 두고 해외투자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