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만 < 한국외국어대 총장 >


요사이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를 둘러싸고 일대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할수 있다.

미국은 종전후 일본을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간주하여 정치 경제 군사면
에서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일본은 그 속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관계로 미국에 "NO"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국가로 지칭되었다.

이렇게 볼때 지금의 양국간 분쟁은 참으로 새로운 양상이다.

이는 세계화시대에 있어서 국가간 경제적 관행의 새면모이기도 하다.

세계화시대란 국가간 혹은 지역간의 정치 경제적 장벽이 무너지고 전세계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공존하는 시대를 뜻한다.

1989년은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화시대가 시작된 해라고 할수 있다.

20세기를 지배해 왔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이념의 장벽을 만들어
놓았다면 동유럽의 자유화는 이러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전세계(쿠바 북한은
아직도 예외)를 개방과 보편성원리가 지배하는 세계화시대로 진입토록
만들었다.

정치면에서는 이념적 대립의 청산이라는 긍정적인 면외에 강대국들이 자국
의 이익에만 주로 집착하게 되는 부정적인 면을 띠게 되었다.

경제면에서는 국가간에 존재하던 보호무역의 장벽이 무너지고 소위 시장
경제체제가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결과로 나타난 국가간의 무한경쟁시대는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교육의
분야에도 도래하고 있음을 본인은 한 대학의 총장으로서 실감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온실속의 화초처럼 외국과의 경쟁, 즉 외풍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에서는 우리 대학들마저도 교육시장의 개방과 더불어
외풍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대학교육의 수요과잉현상이 공급과잉현상
으로 조만간 전환될 것으로 보여 우리 대학들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것 같다.

일찍이 토인비와 같은 학자는 지구사회는 "교육과 대재난간의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고 선언한바 있다.

세계화의 경쟁에서 낙오되는 국가들이 맞이할 대재난(인구 기아 환경 질병
전쟁 등)을 막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교육에 있음을 상기해 볼때 그의
주장은 정말 옳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과연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수 있는 수준에 와
있는가.

양적으로 보면 분명히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졸업생 수가 영국 독일 스웨덴
3국을 합친 공과대학 졸업생 수보다 많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우리는 그 빈약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교수대 학생비율이 선진국 유수 대학의 경우 평균 10대1인데 우리나라
대학의 대부분은 30~40대1에 머무르고 있으며, 연간 학생 1인당 교육비와
학생1인당 도서수도 선진국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해 다음의 몇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로 우리나라 대학은 더 이상의 양적 팽창을 지양하고 교수 학생 교육
내용 교욱기자재 및 시설등에 있어서 질적인 수월성을 확보하는 노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둘째로 온실을 벗어나 세계무대에서 국제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더이상 대학간의 구분이 없는 두리뭉실한 교육프로그램과
내용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을 탈피하여 그 대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잠재력을 극대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교육체계를 그 대학에 맞도록 과감히 개혁해야할
것이다.

셋째로 정부는 규제지향에서 지원지향으로 교육정책방향을 전환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즉 그동안에 많았던 행정규제를 최소화하면서 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대학은 진부하고도 무사안일적인 타성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내적
으로는 행정의 합리화를, 외적으로는 발전기금의 확보를 위한 자구적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단기간 동안에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왔고 정치적 민주화가 우리 생활속에 정착하고 있는 이면에는
뭐니뭐니 해도 우리 대학교육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정치나 경제분야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전체가 낙후된 대학교육의
발전을 뒷받침해 줄 차례가 온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