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품과 기질, 그리고 운수가 결정되는 원리에 대하여 우촌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하늘과 땅이 인간을 만들어낼 때, 아주 인자한 부류와 아주 사악한
부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대개 어슷비슷하게 만들었지.

그 어슷비슷한 사람들은 천지의 맑은 정기와 더러운 사기가 함께
엉켜있는 부류라고 할 수 있지.

맑은 정기는 훤하게 드러나 고운 이슬이 되고 따뜻한 바람이 되어
널리 세상을 적셔주고 감싸주지만, 더러운 사기는 세상의 밝음을
피하여 결국 깊은 구렁텅이나 골짜기 같은 곳에 숨어 있지.

그러다가 사기가 우연히 바람에 날리거나 구름에 밀려 가끔 움직이게
되는데, 그때 잘못 새어나간 사기가 정기와 부딪쳐 엉키게 되는 거지.

그러면 정기는 사기를 용납하지 못하고 사기는 정기를 질투하여 없애려
하지.

그러나 그것은 마치 바람과 물같고 우뢰와 번개같아서 일단 맞부딪치면
서로 상대방을 없애버릴 수도 없고 자기가 양보할 수도 없게 되는 거지.

이렇게 정기와 사기가 엉켜서 생긴 사람들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제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성현이나 군자가 될 수 없고, 또 아무리
타락한다 해도 흉악무도한 인간은 될 수 없는 법이지"

우촌이 잠시 말을 쉬고 자홍이 알아듣나 하고 그 표정을 한번 살폈다.

"사람들이 대개 어슷비슷하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어느 정도 훌륭한
사람도 있고 난봉꾼도 있고 그런거 아닌가"

자홍이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야 정기의 기운이 사기보다 승한 경우가 많은 사람들은 훌륭한
선비정도는 될 수 있는 거고, 사기의 기운이 정기보다 승한 경우가
많은 사람들은 치정에 빠지는 인간정도 되는 거지.

자네가 보옥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나는 그 비슷한 유형의 인물로
진씨댁 귀공자를 생각하고 있었네.

체인원총재(역사 편찬과 진사 선발을 맡아보는 기관의 우두머리) 그분 댁
말이야.

내가 작년에 금릉에 있을 때 그 집 어린 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 행동이 꼭 자네가 말한 보옥과 거의 같단 말이야.

그 귀공자도 여자아이들을 좋아해서 여자애들과 같이 있으면 온순해지고
명랑해지지만, 남자아이들하고는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고 그애들을 욕하고
때리고 한단 말이야.

남자아이들이 여자라는 말조차 입밖에 내지 못하도록 앙탈을 부리기도
하지.

여자라는 말은 지극히 거룩한 말이라 더러운 입으로 발설할 수 없다나.

매를 맞을 때도 아이구 누나, 아이구 누나 하고 꼭 누나를 부르곤
하지.

그러니까 보옥과 그 귀공자는 정기와 사기가 비슷한 형태로 엉킨 부류라 할
수 있겠지.

색마라고는 할 수 없고 치정에 빠지는 인간 부류말이야"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