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엔고가 지속되면서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 경제의
최대 취약부문인 자본재산업에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해 보자는 논의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인 일본이 엔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에
우리 자본재산업의 경쟁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자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이러한 논의에 고무되었음인지 정부가 우리 자본재산업을 국산화차원을
넘어 수출전략 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종합대책을 10일 신경제추진회의를
통해 내놓았다.

이 대책은 저리(7~8%)의 외화대출자금을 국산기계 구입시에도 지원해주고
외화표시 국산기계구입자금 지원규모를 올해 당초 계획했던 1,200억원에서
1조원으로 확대하는등 국내외 금융조건의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 하자보증제도를 강화하고 외국인투자유치를 위해 공장부지를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분양해주는등 국산기계류의 수요확대와
일본 기업의 유치에도 많은 배려를 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정부는 이번에 수립된 대책이 차질없이 추진될 경우 10년 후인
2005년에는 한.일간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루고 자본재수출이 지난해
기준 478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1,500억달러를 상회함으로써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로 올라설 것이라는 장미빛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자본재산업이 궁극적으로 전체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세계화의 당면과제로 인식한 것은 올바른 판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청사진은 의욕만으로는 실현될수 없다는 것을 기존
산업정책들의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수 있다.

이번의 자본재산업 육성대책은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책의 변형에
다름 아니다.

전국 2만4,000여 자본재산업체중 중소기업의 비중이 98.8%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책은 말뿐이지 실효를 거두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2월에도 "중소기업지원 9대시책"이란 "획기적인"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부도업체의 급증이 말해주듯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담보위주의 은행대출관행은 여전하고 영세기업들의 대출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지역별 신용보증기관 설립약속도 정부 부처간
의견이 엇갈려 구체적 설립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자본재산업 육성대책도 기존 중소기업 지원책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국산기계류및 부품의 수요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들도
기존의 각종 기계류.부품 국산화시책들과 대동소이한 것들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국산자본재 구입조건을 완화해주고 수출지원을 확대한다
해도 국산기계류및 부품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정책의 실효를 거둘수 없다.

선거용 단발성 대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 자본재산업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급조된 백화점식 대책의 나열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술인력의 확보와 품질혁신에 모든 대책의 초점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