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규 <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지난 2월20일 한국은행법개정안에 대한 재정경제원의 발표가 있은후
직접적인 당사자인 한국은행의 공식적인 반응을 비롯해 많은 금융전문가들의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중앙은행 제도개편과 관련해서 어떤 구체적이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려는 뜻은 없다.

단지 왜 이 개편안의 시행이 강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기된 주장들중 생각을 달리하는 두가지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 중앙은행은 통화발행과 신용정책수행의 독점적인 지위를 법적으로
부여받는 국가기관으로 정책수행 결과에 대해 대통령을 경유해 종국적으로는
국민에게 책임을 지게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번 중앙은행의 제도개편이 갖는 핵심은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기관들사이에 역할의 분담이 어떻게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고 볼수 있다.

즉 중앙은행은 금융통화정책의 주체로, 재정경제원은 예산과 조세정책의
주체로서의 역할분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럴때 국가기관사이의 권한과 책임균점이 이뤄질수 있으며, 이런 이후에야
이들 정책 당국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경제정책이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개편안은 경제정책의 주체들 사이에서 찾아야 할 두요소중
조화에만 집착한 나머지 균형이라는 또다른 중요한 요소를 도외시하고 있는
듯하다.

중앙은행은 통화.신용정책수단에 의존해 통화가치의 안정과 물가안정을
달성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며 이런 중앙은행의 책임을 위한 노력들이 결코
전체 국민경제발전에 반할수는 없다.

다만 중앙은행은 통화발행과 신용창출이라는 권한과 이에 따른 책임을
부여받은 기관으로서 통화안정이라는 목표에 더 큰 비중을 두게되고 이에
부응하는 기능을 수행할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양적인 성장에 정책의 우선을 두는 정책
주체와 의견을 달리할수 있으며 이런 경우 정책의 두 주체는 국민복리라는
최종적인 목표를 위해 협조와 견제과정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은행 보험 증권기관등에 대한 감독기능을 한곳으로 통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으로 금융전반에 대한 감독기능을 수행할수 있다는 논리를
근거로 재정경제원 산하에 그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금융감독원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가 충분하다.

우선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의무와 기능이 주어진 중앙은행이 부여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도록 적절한 수단제공이 우리 현실에 비추어 필요
하다는 점은 이미 누누이 지적된바 있다.

더욱이 금융부문의 발전과 금융시장간의 연계성을 내세워 기능과 성격이
다른 감독기능들을 한데 모은 새로운 행정조직을 행정부산하에 설치하는
방법을 통해 과연 금융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 축소될수 있고 감독의 기능이
효율적으로 수행될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제기할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금융감독원 설립안은 조직의 통합이 각 감독기구의 인원
축소를 가져다 준다는 가시적인 효과만을 보았고 이 거대한 새로운 통합
조직이 가져다 주게 되는 비효율성의 비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한국은행법개정을 둘러싼 저간의 논의에는 경제정책당국간의 속성과 기능이
상이하다는 점이 경시되고 오직 정책결정의 신속성이라는 잣대만을 가지고
정책수행의 효율성을 측정하려는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이제는 정책당국간의 견제와 협의를 통한 조정과정을 낭비와 소모로 간주
하는 생각과 정책당국의 일사불란한 의사결정만이 경제 발전을 가져올수
있다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