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호 < 농협전문대 부학장 >

다가오는 2000년대 세계사에서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선 인력의 고급화에
그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계속해 교육개혁이 강조되고 있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최근 논의의 핵심은 자녀의 본고사 폐지등 입시부담 경감, 고교교육의
정상화, 교육투자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이들 논지가 일리는 있으나 "국력강화"의 차원에서 보다 발전적으로 검토
돼야 할 것이다.

첫째로 교육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현장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미래의 주인공으로 보다는 지나간 사실과 정보들을
단순암기한 과거의 노예로 만들어 왔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과학기술력은 창의의 축적이기에 과거 지식이나 이론
의 단순암기론 개발되기 어렵다.

이 점에서 현 객관식 중심 수능시험위주 대학입시는 개인적 "기회균등"이나
"용이한 평가를 위한 행정편의"차원에서는 바람직하나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유능인재의 계발"이란 국가적 차원에선 문제인 것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배우기도 바쁜데 우린 졸업과 동시에 거의 써
먹지도 않을 많은 것들에 "진학"이란 통과의례를 위해 많은 돈과 자원을,
젊은이의 정열을 낭비해 왔다고 할수 있다.

예컨대 국어는 12년간 배우고도 모자라 박사도 풀기 어려울 정도로 훈련
해서 어디에 쓸 것인가.

모든 국민을 "국문학자"로라도 만들려는 것인가.

역사도 바람직한 역사의식이나 철학, 민족적 정신력을 개발 육성하기 보단
연대별 인물이나 사건위주의 단답 암기형이 주류를 이루어왔다.

이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일종의 낭비인 셈이다.

기업과 사회현장에서 학교교육을 중시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모든 교육평가가 상대평가 아닌 "절대평가"로, 객관식보다는
"주관식"으로 돼야 한다.

상대적 서열을 매기는 상대평가는 과잉경쟁의식을 유발하고 동료를 경쟁의
상대로만 적대시하게 된다.

이 사회의 지나친 이기적 행태와 반목 갈등현상도 "서열위주 학교교육"을
통한 과잉경쟁유발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본다.

과목별 학업성취도를 기준한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동료간에도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보다 나은 성적을 얻을수 있는 협조자가 될수 있으므로
우리의 고질적인 약한 협동단결심이 강화될수 있는 것이다.

국민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주관식 평가"는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은 물론 주어진 정보나 원리를
현실사회의 개선에 선용할수 있는 응용력 적응력 문제해결력의 개발을
촉진하게 된다.

이를 위해 예컨대 심리학 교수도 서구 중심의 단순이론 문제가 아니라
"성수대교 붕괴의 근본원인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책을 논하라"는
식으로 문제를 낼수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사고력과 응용력의 개발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주어지면 고교
교육이 그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고 고교입시와 중학교육이, 또한 국민학교
교육이 창조적 자율적인 교육으로 전환될수 있는 것이다.

평가방법이 학교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셋째로 학생선발 방식에서 "특수성"이 크게 수용돼야 한다.

미대 음대 지원자가 영어 수학 공부에 매여선 세계적인 화가나 음악가가
배출되기 어렵다.

그림이나 음악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일반적 입시
원칙의 적용에서 배제돼야 한다.

그 영역의 소질과 업적만으로 입학여부가 결정되게 하는 대학은 물론
음악고 미술고도 생겨야 한다.

또한 영농후계자가 되기 위한 대학교육에서는 선발은 면접과 서류전형으로,
학점은 농장에서의 실습으로 취득과 졸업이 가능토록 그 특성을 살려줘야
하는 것이다.

"일반교육법상의 형식적 요건의 충족"을 위해 발랄한 청년기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리고 막상 전공에는 심취할수 없는 우둔한 행진을 이제는 그만
둬야 한다.

넷째로 공부를 청소년의 부담으로 생각하는 일반의 인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청년기에는 왕성한 에너지의 분출시기요, 이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적극
활용해야만 그 인생 개인이 영광스럽고 그 같은 구성원이 많은 사회와
국가는 번창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부"는 지금 이상으로 골똘히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에게도 희망찬 미래가 있을수 있다.

다만 "필요없는 공부"에서만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

써먹지 못할, 쓰이지 않을 교육을 위한 교육, 지식을 위한 지식, 사회적
적합성과 실용성도 없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으로부터는 당연히 해방시켜
줘야 한다.

다섯째로 교육개혁에 "돈"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돈이 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교육은 교육자가 된 만큼 된다.

보다 실질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으로 개혁하겠다는 교육자 자신의 자기개혁
이 선행돼야 한다.

개인차원에서의 이기적 접근은 이제 그만 하자.

국가적 인력개발의 차원에서 선지원 후시험을 영원히 고정하자.

눈치와 잔재주로 천부적 잠재력이 개발 되겠는가.

인재는 무한한 미지의 가능성을 향한 도전으로 크게 개발될수 있다.

수능도 없애고, 대학별 학과별 인재개발 목적대로 주관식 본고사를 치르게
하자.

전적으로 대학자율에 맡겨서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