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파머라는 한 천재적인 미국인 컴퓨터 보안전문가가 지난달 20일 3개월
동안 몸담고 있던 미실리콘 그래픽스사에서 쫓겨났다.

사람들이 직장을 얻거나 잃는 일이야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새로울게 없는
것이지만 그의 해고사유는 좀 특이했다.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자신의 생일인 4월5일에 소프트웨어 하나를 "선물"
하려 계획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가 선물하려한 소프트웨어는 "사탄(Satan)"이었다.

썩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그것이 해고사유는 아니었다.

기능이 문제였다.

사탄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보안시스템의 결점을 찾아내도록 고안된
소프트웨어라는 기능설명 용어의 머릿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이 소프트웨어는
문자 그대로 보안시스템에 존재하는 "구멍"을 탐지해 내는 기능을 지녔다.

친구와 함께 사탄을 창조해낸 파머는 보안담당자들이 자기가 관리하는
컴퓨터의 보안시스템을 미리 사탄으로 점검, 결점을 찾아내 이를 보완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보안사고를 예방하려 했다고 개발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회사측의 생각은 달랐다.

이 프로그램이 해커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보안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따라 회사측은 사탄이 인터넷에 올려져 파문이 일기 전에 그를 내보내
쓸데 없는 부담을 지지 않으려 조치한 것이었다.

예정대로 지난 5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배포, 인터넷 보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사탄은 사이버스페이스 건설자들이 안고
있는 최대 고민거리의 실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이버스페이스시대를 꽃피우기 위해 해결해야할 과제는 보안문제가 전부
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컴퓨터에 들어있는 자료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디지털갱으로
부터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하느냐 하는게 사이버스페이스의 흥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사이버스페이스시대의 개막은 사이버스페이스 치안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두가 안심할 만 하다고 인정하게끔 치안유지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버스페이스시대를 앞당기는 가장 큰 추진력인 상용화
열기가 사그러들 수도 있다.

때문에 완벽한 보안시스템을 강구하고 디지털정보를 다루는 솜씨가 누구
보다 뛰어난 사이버캅(Cybercop)을 보강하는게 필수적이다.

사탄의 등장은 이런 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 인터넷의 변천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 하다.

인터넷상의 어떤 호스트 컴퓨터이건 주소만 대면 그 보안시스템의 약점을
알려주는 이 사탄은 인터넷에 물린 4백만~5백만대 호스트컴퓨터에 커다란
위협요소이다.

이 소프트웨어의 희생양이 잇달아 생기고 인터넷의 보안체계가 허술한
것으로 판명나기 시작하면 사이버스페이스의 번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미언스트&영사가 미국내 1천2백개 회사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컴퓨터 보안시스템 완비여부 조사에서도 이같은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는 조짐이 엿보인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상이 보안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재정적인 손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답해 보안시스템은 아직까지 취약한
상태인 것으로 판명났다.

따라서 사탄이 위력을 발휘하면 사이버쇼핑등 인터넷의 상용화는 더욱
멀어질 수도 있는게 현실이다.

또 컴퓨터 네트워크의 구축방식도 보안전문가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
되고 있다.

종전처럼 중앙에 설치된 1대의 호스트 컴퓨터가 네트워크를 모두 관리
하는게 아니라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들도 나름대로 자료를 관리하는
식으로 바뀌면서 보안시스템의 완벽을 기하는 일이 점차 힘들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인터넷에 접속된 컴퓨터의 보안이 걱정할 정도로 취약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사탄이 검증해줄 수도 있어 오히려 사이버스페이스시대의 개화를 앞당기는
촉매로 작용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암호화기술이 상당히 진전, 앞으로는 해커들이
정보를 빼 가더라도 자료를 판독하기는 힘들어져 전자갱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기술관련 시장조사업체인 미킬렌&어소시에이츠사는 오는 2000년
사이버쇼핑센터의 매출규모가 6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그렇지만 이 예상이 들어맞을지는 미지수다.

두 얼굴을 지닌 사탄이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면 이 회사는 전망치 수정이
불가피해지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사이버캅들로 구성된 "십자군"이 긴 성전
을 치러야만 하는 시대가 열릴 것 같다.

< 김현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