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혜림사라는 절에 원관이라는 중이 있었다.

그가 병들어 죽을 무렵,친구인 이원이라는 자를 불렀다.

원관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이원에게 유언처럼 말했다.

"십삼년 후에 우리 항주에서 다시 만나세"

그리고는 곧 원관의 숨이 넘어갔다.

십삼년 후에 항주에서 만나다니.이 친구 자기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쯧쯧.

이원은 처음에는 원관이 의식이 흐릿한 가운데 헛소리를 한 줄로
알았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가 죽어가면서 한 그 말이 새록새록
마음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래서 이원은 원관이 죽은지 몇년이 되었는가를 늘 따져보며 십삼년의
세월을 보내었다.

드디어 십삼년이 되었을 때 이원은 원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항주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원관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죽은 친구를 만나려고 하다니.이원은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았나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항주 어딘가에서 원관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한한 확신이 자꾸만 찾아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하루는 이원이 항주 천축사 뒷산을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산 중턱에 삼생석(삼생석)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웬 목동이
그 바위에 앉아, "삼생석 위에 옛 정혼." 어쩌고 하며 시를 읊고
있었다.

이원이 가만히 보니 그 목동이 바로 원관이었다.

세번 태어나서 앉을 수 있다는 그 삼생석은 원래 천상의 영하 강가에
있던 바위였다.

그 바위 옆에 강주초라는 풀이 한포기 자라고 있었다.

적하궁에 있는 신영시자라는 분이 나뭇잎에 맺힌 좋은 이슬들만 모은
감로를 날마다 강주초에 뿌려 그 풀을 정성스레 길렀다.

그러자 강주초는 영생하는 풀이 되었다.

원래 하늘과 땅의 정기를 타고난데다 감로의 자양분까지 받아 자란
이 풀은 마침내 초목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그것도 어여쁘고 성숙한 여자의 몸으로. 이제 강주 선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 여자는 이한천가에서 종일 노닐며 배가 고프면 달콤하고
푸른 밀청과를 따먹고 목이 마르면 관수해의 물을 마셨다.

그런데 밀청과를 따먹으면 따먹을수록 정에 더욱 굶주리게 되고,
관수해를 마시면 마실수록 수심만 더욱 차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강주 선녀가 자기를 감로로 키운 신영시자의 은혜를
아직 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신영시자는 인간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은 유혹을 받아
훌쩍 천상을 떠나버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