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자국산 농산물의 통관지연을 이유로 WTO(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절차에 들어갔다.

미국이 한국과의 통상분쟁해결을 위해 WTO를 통한 제소전 절차를
밟는 것은 이번이 첫 케이스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과 무역마찰이 발생하면 쌍무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미통상법 슈퍼301조를 앞세워 한국에 직접적인 압력을 가한 것이다.

이점에서 미국의 이번 조치는 종래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새로운
통상압력이라고 볼수 있다.

쌍무적 개방압력 뿐만아니라 다자간 협상기구까지 동원해서 한국시장을
열어보겠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쌍무적 압력에 의한 일방적 무역공세를 계속하면서도 무역분규의
성격에 따라서는 세계무역기구로 넘기겠다는 위협을 병행할 속셈인
것이다.

미국은 이미 내달중에 한국의 식품유통기한 제도에 대해서도 똑같은
WTO절차를 밟겠다고 공언한 상태이다.

미국의 이같은 통상압력 강화는 진작부터 충분히 예견돼온 일이다.

쌍둥이 적자라는 만성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지속적인
달러약세의 유도를 통해 자국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외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시장개방 공세를 통해 자국산 제품의 수출증대에
집중적인 노력을 경주할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미국은 한국을 10대 성장시장(BEMs)으로 꼽고 집중공략한다는 통상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지난달말 발표된 미국의 연례 무역장벽보고서에 한국에 대한 불만사항이
특히 많았던 것도 이 통상정책의 초점이 시장잠재력이 큰 한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경수로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인의 대미 불만이 점증하는 상황인데도
미국은 철저히 경제논리를 우선시해 통상문제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미국이 한국시장에 대한 개방고삐를 한층 더 죄는 것은 한국만큼
공세를 펴는데 만만한 나라도 없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는 것도
우리의 숨김없는 심정이다.

며칠전에 끝난 양국 통신협상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너무도
쉽게 밀렸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국민건강에 직결되는 식품분야에서까지 미국의 개방공세에 힘없이
굴복한다면 우리의 통상주권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질게 분명하다.

지난2월 미국의 무역보복 압력에 중국이 주권을 걸고 맞섬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받아낸 일은 우리의 허약한 협상력에 비춰볼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조직개편으로 통상정책을 전담하는 통상산업부가 새로 발족했지만
미국의 시장개방 공세에 속수무책인 듯한 모습을 보는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은 세계 13대 무역대국이다.

그런데도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는 경제외적인 불이익을 고려한
탓인지 항상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해온 느낌이다.

쌍무협상이건 다자간 협상이건,설득력있는 대응논리와 세련된 외교수완과
더불어 당당하게 시비를 가려보겠다는 적극적인 협상자세가 아쉽다.

불편한 한.미 통상갈등의 종점이 과연 어딘지 정말 걱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