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인사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한 쟁의행위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면
노동쟁의조정법상 불법으로 볼수 없다."

지난93년 2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행정의 사령탑을 맡은 이인제
전노동부장관은 그해 5월 국회노동위원회에 참석,지금까지 금기시돼온
노조의 경영권참여를 허용하는듯한 발언을 해 전국산업현장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뿐만아니라 그는 무노동 부분임금제 적용,해고효력을 다투는 근로자의
조합원인정등 무려17개의 행정지침을 대법원판례에 맞게 손질하고 해고
근로자의 원직,복직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전국산업현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재계와 경제부처들은 개혁노동정책에 대해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발상"이라며 거센 반발을 보였고 노동계는 "근로자의
입장이 대폭 반영됐다"며 박수를 보냈다.

물론 경영권참여와 무노동부분임금제도입은 재계의 반대로 무산되고
해고자복직문제는 노사자율에 맡기기로 후퇴했지만 사업장노조마다
노사간 이해가 엇갈리는 이들 조항을 매년 협상테이블에 풀어놓아
지금까지 노사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노사관계를 안정시켜야할 노동부가 노동현실은 도외시 한채 노사분규를
부채질하는 정책만 늘어 놓아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창원지역 S사
M사장).

"노동부가 해고근로자의 원직,복직 방침을 밝힌 이후 노조가 임금
협상철만 되면 회사정문앞에서 텐트를 치고 해고근로자의 원,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 당혹스럽다"(창원지역 D사 H상무).

이처럼 장관 한사람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노동행정은
일관성을 잃은채 노사불안만 부채질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91년 최병렬장관은 자신의 주도하에 기본급,제수당등 모든 임금을
묶어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총액임금제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최장관의 총액임금제 도입도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중도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같은 총액임금제도입시도는 정부에 임금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따라 정부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임금정책을 펼쳐도 노동계는
무조건 반발하는등 역작용을 빚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노동정책의 일관성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것은 "충분한
사전검토나 노동현장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즉흥적인 발상으로 행정을
결정하기 때문"이며 이는 곧바로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윤성천광운대교수는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노동행정에 일관성과
신중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정책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다 걸핏하면
장관이 바뀌고 직원의 이동이 잦기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동부관계자 조차도 "수십년 동안 여러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만들어낸
정책을 장관한사람이 하루아침에 뒤흔들어 놓을땐 난감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노사분규현장에 대한 정부내의 입장이 자주 바뀌어 분규수습등을 위해
행정지도를 펼치는 현장 노동당국자들에게 혼란을 겪게 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남재희장관재직시절인 지난해7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노사분규가
났을때 행정지도를 펼쳐야 하는 노동지방사무소 경남도청 경남지방경찰청
등의 관계자들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당초 현대중공업 사태를 풀기위해 공권력투입,긴급조정권발동등
강경대처방침을 밝혀 현지당국자들은 이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해왔으나
분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대응전략이 갑자기 노사자율원칙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노동부본부에 "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응방안이 어떤 방향이냐"고
묻는 현장의 지방노동사무소와 사법당국관계자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노사관계를 일선에서 지도하는 근로감독관들의 비전문성도 현장의
노사관계를 불안하게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근로감독관은 모두 5백61명으로 노동부 전체 공무원수
(2천7백57명)의 20%에 해당되고 있다.

이가운데 5년이하의 경력자가 61%에 달하고 1년미만의 "초년병"도
12%나 된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수 있는 5년이상의 경력자는 39%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경험이 일천한 근로감독관들이 많다보니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나
근로기준법준수여부등에 대해 문의를 하면 근로감독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인천 남동공단내 C사 L위원장)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성천광운대교수는 "노동행정의 일관성을 갖기위해선 최고정책결정권자인
장관의 합리적사고와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정책을 수립할땐 우리 노동현장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한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결정하고 현장 노사관계에 대한
행정지도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행할수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