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간판급 금융그룹인 베어링의 추락은 주가지수선물거래와 관련,
교과서적인 실패사례로 꼽을 만하다.

더욱이 눈앞에 다가온 주가지수선물시장의 시험가동을 맞는 국내 기관
투자가들에는 한시도 잊을 수 없는 타산지석이라고 할 수 있다.

28세의 한 젊은이가 2세기가 넘는 역사와 전통의 대금융기관을 하루아침에
헌종이쪽(네델란드의 ING그룹이 1파운드에 인수했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으로 만든 베어링파산사건은 주가지수선물(파생금융
상품)거래의 위험성과 내부통제기능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 세계적인
금융사고였다.

베어링의 싱가포르현지법인인 베어링선물사의 트레이더인 니콜라스 리슨은
작년말 일본증시의 주가지수선물인 닛케이(NIKKEI)225가 95년3월께까지는
1만8,500엔~1만9,500엔사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선물거래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예측을 과신한 리슨은 만기내에 매매계약때 정해진 가격으로 각각
매수할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과 매도할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을 동시에
각각 2만건씩(약36억달러어치)을 합성, 숏스트래들포지션을 취했다.

3월 옵션행사일만기까지 닛케이225지수가 리슨의 예측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무조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일본주식시장은 1월16일 고베지진이 발생하기전까지는 리슨의 기대대로
1만9,000엔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베지진의 피해규모가 예상외로 크게 확대되자 일본주식시장은
급락, 1월23일에는 1만7,785엔까지 떨어졌다.

리슨은 이 때 결정적인 판단착오를 일으킨 것같다.

손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리슨은 지수를 1만8,500엔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싱가포르증시(SIMEX)와 오사카증시에서 닛케이225지수선물을 집중매수
하기 시작했고 일시적으로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리슨과 다른 예측을 한 대부분의 기관들이 동참하지 않은 상황에서
리슨의 고군분투는 역부족이었다.

2월8일이후 일본의 주가는 1만8,500엔이하로 다시 하락했고 2월20일이후
에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사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2월24일 리슨이 잠적할 당시 그가 지수를 떠받치기 위해 사들인 선물
계약수는 싱가포르에서 2만5,000건, 오사카에서 1만7,000건이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6,000억엔으로 지수가 1,000엔 하락할 때마다
약3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는 규모였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트레이더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지나친 재량권을
준 채 사후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리슨은 작년1~7월사이에 싱가포르에서 벌어들인 돈이 베어링스전체수입의
34%를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트레이더였다.

그러나 베어링은 리슨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음으로써 엄청난 재앙을
자초했던 것이다.

또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으로 거래가 이원화됨에 따라 거래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SIMEX는 투기목적의 선물거래규모를 제한하고 있지만 차익거래목적이라고
허위신고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때문에 베어링사건을 통해 두 시장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확립돼야
한다는 점이 주요과제로 등장했다.

때문에 기관들로서는 딜링부서와 결제부서를 분리하는 등 거래내용을
관찰할 수 있는 내부통제시스템이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베어링사건은 또 거래소가 회원별 미체결약정 차익거래상황등을 신속히
공시함으로써 거래의 투명성이 제고될 수 있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도 함께 던져 주었다.

< 이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