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경환 선녀를 따라 구경한 것들을 떠올리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전각만 하여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더군. 치정사, 결원사,
조제사, 야원사, 춘감사, 추비사) 등등.

내가 경환 선녀에게 부탁을 하였지.

저 전각들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러자 경환 선녀가 난색을 표하는 거야.

그 전각들 안에는 천하 모든 여자들의 과거와 미래를 기록한 장부가
있다면서, 그 장부들은 나같이 세상 티끌이 묻은 사람들에게는 미리
알도록 보여줄 수가 없다는 거야.

그러니 내가 더욱 궁금할 수밖에.

그래서 경환 선녀에게 떼를 쓰다시피 막 졸랐지. 조르는 데는 세상
에서 나를 당할 자가 없을걸"

"그럼요. 도련님이 조르면 아무도 당해내지 못하죠. 우리 마님도요.
그리고."

"그리고? 뭐가 그리고냐?"

"그리고 지금도 도련님이 조르셔서 나를 만지고 있잖아요"

습인이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보옥이 보니 습인이 고개를 숙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옥이 습인을 꼬옥 껴안아 주었다.

붕긋이 솟은 습인의 젖가슴이 물컹 보옥의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아이의 젖가슴은 얼마나 큰 것일까.

보옥은 빨리 꿈 이야기를 마치고 습인의 옷을 벗겨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조르다니? 네가 좋아서 스스로 내 품에 안긴 것이 아니냐"

"아이, 도련님도. 몰라요이"

습인이 두 주먹으로 보옥의 등을 두드렸다.

보옥은 기분이 더욱 흐뭇해져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무리 태허환경의 규칙이 그렇다 하더라도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
않으냐, 나한테만 살짝 보여달라, 다 보여줄 수 없으면 한 군데만
이라도 보여달라, 그렇게 계속 조르니 경환 선녀도 손을 들더군.

그래 그 많은 전각들 중 박명사 한 군데만 조금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거기로 데리고 갔지"

"박명이라면 미인박명, 가인박명 할때 그 박명이잖아요?"

"그렇지. 그 박명이지. 소동파 시인이 어린 여승을 노래하면서 지은
시가 "가인박명" 이지.

자고로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은 박하기 십상이네(자고가인다명박).

문은 닫히고 봄은 지나가니 버들꽃은 떨어지네(폐문춘진양화락).

다른 시들은 못 외워도 이 시만큼은 외우지. 시를 잘 모르긴 하지만
내가 아는 시중에 제일인 것 같애"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