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수상] 교육개혁, 도덕성 회복부터..홍일식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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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들어서 각종 개혁조치가 잇달아 취해졌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를 비롯,전에는 감히 용단을 내리기 힘들었던
조치들이 과감하게 도입됐다.
이러한 제도들의 성공여부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이같은 혁명적인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새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넘어선 현 싯점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중의 하나는 교육개혁 문제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역대 정권들이 모두
크건 작건 손을 대려 했던 부분이 바로 교육개혁 문제이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안을 못하고 있는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흔히들 교육개혁 이야기가 나오면 대학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한다.
고등학교 교육을 이렇게 바꾸어야한다는등 여러가지 대안이 제시되곤
한다.
이러한 논의의 대부분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년간 여러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그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시행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아직도 수많은 문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교육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왔고 수많은
대안이 제시됐음에도 불고하고 아직 우리나라 교육이 정상화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교육의 근본이 되는 도덕성 회복이 선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대학의 실추된 명예와 도덕성이 먼저 회복되지 않는 이상
단순한 입시제도를 바꾸는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가 없다.
우리는 도덕성의 바탕이 없는 물질적 풍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범죄와 비리를 통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세금비리문제,사이비 종교집단의 페혜등은 모두
도덕성 결핍의 결과이다.
그러면 도덕성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가.
바로 우리나라와 동양의 전통문화를 오늘의 산업사회에 맞게 전승
재창조하는데서부터 도덕성 회복이 시작되어야 한다.
동양의 전통문화 속에는 보배로운 지혜가 많이 있다.
물론 과거 농경사회에서 적용되어온 전통문화를 "세계화"를 지향하는
오늘날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우리고유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원자래"로 새로운 21세기 한국문화와
동양문화를 창조해 나가야한다.
아주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를 하나
제기해보자.요즘 우리는 식구중에 한 사람이 생일을 맞으면 으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자연스럽게 " Happy birthday to you "를
부른다.
서양의 생일축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도 안된 과거 우리의 생일 축하 풍습이 어땠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 우리민족에 있어 생일은 나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생일날에는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고 부모님은 이에 화답,자식에게
잔치상을 차려주시곤 했다.
물론 이같은 과거의 전통을 모두가 그대로 답습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생일날 " Happy birthday to you "보다는 "어머님 은혜"나
"사모곡"을 부르면 어떨까.
이같은 전통문화를 어떻게 갈고 닦아 황폐해진 도덕성을 회복할
것인가는 오직 우리의 지혜와 역량에 달려있다.
서구적인 보편성(자유민주주의등)에 우리의 특수성을 접목시켜 지금의
서구문화보다 한 차원 높은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이다.
이같은 과제의 달성은 바로 옳바른 교욱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하며
대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한다.
고려대학교에서 시작한 "바른교육 큰 사람 만들기 운동"도 바로
이런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순국 선열의 뜻을 다시 기리고 그들의 유족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갖기를 촉구하는 것,지체부자유자에 대한 사회 시설확충 노력,효행과
선행의 권장등이 이 운동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이같은 운동을 통해 새로운 도덕으로 재무장한 신한국인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21세기의 바람직한 세계인상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대학이 이같은 운동을 통해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면
교육 개혁의 길도 먼 것만은 아니다.
정치가 한때 혼란을 거듭해도 대학이 건전하고 활기있게 버티고
있으면 그같은 혼란은 오래지 않아 극복된다.
경제가 어지러워도 그 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같은 어려움은 극복가능하다.
그러나 교육이 잘 못되면 아무리 정치가 잘되고 경제가 잘 돌아가도
그것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2일자).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를 비롯,전에는 감히 용단을 내리기 힘들었던
조치들이 과감하게 도입됐다.
이러한 제도들의 성공여부는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이같은 혁명적인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새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넘어선 현 싯점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중의 하나는 교육개혁 문제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고 역대 정권들이 모두
크건 작건 손을 대려 했던 부분이 바로 교육개혁 문제이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안을 못하고 있는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흔히들 교육개혁 이야기가 나오면 대학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한다.
고등학교 교육을 이렇게 바꾸어야한다는등 여러가지 대안이 제시되곤
한다.
이러한 논의의 대부분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수년간 여러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그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시행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아직도 수많은 문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교육제도 개선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왔고 수많은
대안이 제시됐음에도 불고하고 아직 우리나라 교육이 정상화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교육의 근본이 되는 도덕성 회복이 선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대학의 실추된 명예와 도덕성이 먼저 회복되지 않는 이상
단순한 입시제도를 바꾸는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가 없다.
우리는 도덕성의 바탕이 없는 물질적 풍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범죄와 비리를 통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세금비리문제,사이비 종교집단의 페혜등은 모두
도덕성 결핍의 결과이다.
그러면 도덕성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가.
바로 우리나라와 동양의 전통문화를 오늘의 산업사회에 맞게 전승
재창조하는데서부터 도덕성 회복이 시작되어야 한다.
동양의 전통문화 속에는 보배로운 지혜가 많이 있다.
물론 과거 농경사회에서 적용되어온 전통문화를 "세계화"를 지향하는
오늘날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우리고유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원자래"로 새로운 21세기 한국문화와
동양문화를 창조해 나가야한다.
아주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를 하나
제기해보자.요즘 우리는 식구중에 한 사람이 생일을 맞으면 으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자연스럽게 " Happy birthday to you "를
부른다.
서양의 생일축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도 안된 과거 우리의 생일 축하 풍습이 어땠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 우리민족에 있어 생일은 나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생일날에는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고 부모님은 이에 화답,자식에게
잔치상을 차려주시곤 했다.
물론 이같은 과거의 전통을 모두가 그대로 답습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생일날 " Happy birthday to you "보다는 "어머님 은혜"나
"사모곡"을 부르면 어떨까.
이같은 전통문화를 어떻게 갈고 닦아 황폐해진 도덕성을 회복할
것인가는 오직 우리의 지혜와 역량에 달려있다.
서구적인 보편성(자유민주주의등)에 우리의 특수성을 접목시켜 지금의
서구문화보다 한 차원 높은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이다.
이같은 과제의 달성은 바로 옳바른 교욱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하며
대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한다.
고려대학교에서 시작한 "바른교육 큰 사람 만들기 운동"도 바로
이런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순국 선열의 뜻을 다시 기리고 그들의 유족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갖기를 촉구하는 것,지체부자유자에 대한 사회 시설확충 노력,효행과
선행의 권장등이 이 운동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이같은 운동을 통해 새로운 도덕으로 재무장한 신한국인을
창조하고 더 나아가 21세기의 바람직한 세계인상을 창조하자는 것이다.
대학이 이같은 운동을 통해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면
교육 개혁의 길도 먼 것만은 아니다.
정치가 한때 혼란을 거듭해도 대학이 건전하고 활기있게 버티고
있으면 그같은 혼란은 오래지 않아 극복된다.
경제가 어지러워도 그 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같은 어려움은 극복가능하다.
그러나 교육이 잘 못되면 아무리 정치가 잘되고 경제가 잘 돌아가도
그것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