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장기업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수 있다.

그 회사의 매출액,순이익,부채비율과 같은 경영지표는 물론 주요
생산품, 연구개발비 비중이나 확인되지 않는 루머에 이르기까지
주가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기업들을 조사, 분석해온
나에게는 좀 색다른 기업분석 방법이 있다.

즉 그 기업의 게시판을 잘 관찰해 보는 방법이다.

게시판에 딱딱하고 오래된 불조심 표어나 엉성하고 지저분한 공문,
대충 이런 류의 게시물만 불어있는 회사는 대개 우량기업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반면에 각종 동호회 회원모집 포스터나 경사를 알리는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게시물로 가득한 기업은 여러가지 면에서 앞서가는
기업인 경우가 많다.

생동감이 없는 회사에 생산성이 높을수 없고 생산성이 높지 않은
기업에 이익이 많을리 없으며 그러니 그 직업의 직원들이 신바람
날리가 없고 신바람이 나지 않으니 게시판이 썰렁할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최근 각 기업들이 기업문화에 많은 신경을 쓰고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놀때 열심히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전적으로 옳은 말이라 생각
한다.

우리 회사의 교육과 인사부문 업무를 맡으면서 사람을 보고 판단
하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기업을 분석하는것보다 사람을 분석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나름대로 적용시킬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가 그
사람의 업무 외적인 활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인데 취미가 다양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사람, 즐기려 들지 않는 사람, 고루한 사람은 역시
활동적이지 못하고 조직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역할을 잘 헤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여진다.

함께 술을 마셔봐도 그렇다.

좌중을 신나게 웃겨가면서 분위기를 이끌고,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세심한 신경을 쓰는 사람이 그다음날 아침 출근도 제일 먼저 하고,
눈치 보면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사람이 오히려 지각하는 겨우가
많다.

30여년간 산을 오르면서 경험한 여러가지 일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솔직한 대 자연앞에서 인간 역시 솔직해 질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의중이 깊은 사람도 산을 오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산이 참 아름답다거나 오르는데 힘이 든다거나 이제 그만 내려갔으면
좋겠다거나.

또한 산이 내게 주는 교훈은 산은 오로지 한곳에서 봄 여름 가울 겨울
의 변화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상황에 따라서 정도를 저버리고 돌아서는 인간 사회의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큰 산을 더욱더 그리워하게 된다.

넓은 가슴으로 품어주는 산에 오르면 복잡하고 힘든 사회 생활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벽들이 산에서는 허물어 진다.

그냥 허물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허물어진 그 자리에 새로운
활력과 의욕이 자리하기에 자연이 좋고 산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곧 봄이 되면 강원도에 있는 민등산엘 갈 생각이다.

거의 매주 다니다시피한 산이지만 최근에 뜸했던 옛친구들과 함께
파아란 생명의 새 순을 마구 솟아 올리는 원추리 가득한 그 산의
정상에서, 또한 가득한 봄 햇살에 재 자신을 원 없이 맡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