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노 이용우라는 화가가 있었다.

930년대 화단의 주역이었던 그는 심전 안중식에게서 그림을 배운
동문이면서도 이당 김은호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술만 취하면 이당의 집을 찾아가 담밖에서 "이당, 너 세필로
미인도나 그리는 놈이 그게 화가냐"고 호통을 치곤했다.

어느해 묵로가 육당 최남선에게 세배를 갔다.

육당은 묵로가 조르는 바람에 겸재의 산수화, 혜원의 풍속도, 조희용의
매화그림을 보여주었다.

묵로가 갑작이 다락문 4쪽에다 매화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섰다.

웃통을 벗어제낀 목로는 일필휘지로 매화를 그려갔다.

"허허 금세 오원이로군" 놀란 육당은 이렇게 연거푸 칭찬을 했다.

묵로는 그때부터 스스로 "금세 오원"이라고 내세우고 다녔다.

문화예술인들이 망국민이 되어 술타령으로 시름을 달래던 암울한
1930년대 이야기를 지난주 타계한 조용만선생이 기록해 놓은 "30년대의
문화예술인들"에 나오는 한토막이다.

21일 문체부가 발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자
1,914명의 반에 가까운 48.5%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대우가 형편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93년에 비해 9.6%나 증가한수치다.

또 직업에 대한 불만도 전년의 12.4%에서 18.6%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2.6%에서 17.5%로 줄어든 반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0.2%에서 69.5%로 늘어난 것을 보면
어림잡아도 생활수준은 나아진 것이 분명한데 왜 그렇게 사회적대우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국가건설기와 경제건설기를 거치면서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
문화창조에 종사하는 문화예술인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보상
때문이라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21세기를 "문화복지의 시대"로 설정해 놓았다.

"신르네상스운동"벌일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이런 정책에 대해 72.7%가 만족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 정책적 제도적 지원미비를 창작활동에 대한 제일 큰 장애요인으로
꼽고 있다.

정부의 문화정책도 재고할 여지가 많지만 "지원을 받아야만 창작도 할
수 있다"는 문화예술인의 비생산적인 구걸근성도 버려야 할때가 온것
같다.

묵로같은 "금세 오원"이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문화예술인의 자존이 필요한 때인듯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