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국가들간의 정치경제통합이 이루어지려면 단일통화 창설이
필수적이다.

서로 다른 중앙은행아래 각자 다른 통화를 사용한다면 정치 경제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로 이때문에 유럽연합(EU)은 빠르면 오는97년,늦어도 99년까지는
단일통화를 도입한다는 야심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난 92년2월 제정된 유럽통합(마스트리히트)조약은 단일통화의 도입시기와
이에 필요한 선결과제를 명확히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단일통화제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EU재무장관들은 20일 브뤼셀에서 회담을 열고 단일통화문제를 깊이
논의했다.

회담결론은 불행히도 97년까지는 단일통화도입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단일통화창설을 가장 탐탁치 않게 여겨오던 영국은 물론,지금까지
호의적이던 독일조차 단일통화제의 조기 실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케네스 클라크영국재무장관은 "현재의 여건상 97년에 단일통화체제를
도입하기란 불가능하다.

99년에도 어려울지 모른다"고 밝혔다.

영국은 유럽중앙은행 설립과 그에따른 단일통화 창설이 정치경제적 주권과
독립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에서 성급한 단일통화 도입에 반대해 왔다.

테오 바이겔독일재무장관도 "97년실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유럽경제통합여부는 15개 회원국중 독일 프랑스 영국등 핵심3개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과 독일이 단일통화의 97년 실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단일통화창설은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더구나 지난주에는 유럽통화기구(EMI)의 랑팔루시총재도 통일된 화폐가
예정대로 도입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 세계경제사의 일대 사건이 될
유럽 단일통화 창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해 설립된 EMI는 단일통화가 창설될경우 유럽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게 될 기구이다.

이처럼 단일통화창설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득세하고 있는 것은 지금 EU가 안고 있는 여러문제들 때문이다.

우선 단일통화의 전단계로 인식되고 있는 유럽환율안정장치(ERM)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단일통화제를 실시하려면 먼저 15개 회원국간의 환율이 안정되면서
어느 한점으로 수렴돼야 한다.

상황은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92년과 93년 유럽환율위기가 발생,영국과 이탈리아가 ERM에서
탈퇴한후 아직까지 재가입하지 않고 있다.

또 이탈리아 리라화,스페인 페세타화등 일부 통화가치가 독일마르크에
대해 크게 떨어지는 환율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그에따라 93년8월까지는 ERM의 환율변동 허용폭이 기준환율로부터 상하
2.25%였으나 지금은 상하 15%로 확대돼 환율의 수렴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회원국중 경제통화통합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
국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15개국가중 현재 룩셈부르크만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을 뿐이다.

97년이전에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가 조건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봐야 절반도 안되는 7개국에 불과하다.

마스트리히트조약에는 회원국중 3분의2이상이 조건을 충족해야만 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현상태로 볼때 97년에 단일통화를 창설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대다수 회원국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모든 회원국은 97년까지 단일통화창설을 위한 제반
조건들을 충족시킬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키로 했다.

단일통화제는 그러나 단순히 말로만 노력한다고 약속해서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회원국 모두가 일치단결,적극적으로 추진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대역사이다.

영국등 일부 국가들이 단일통화제도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EU가 97년은 말할것 없이 99년에도 단일통화를 창설할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 브뤼셀=김영규 특파원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