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휘호를 오쿠보는 야마요시에게 주었다.

좀처럼 드문 일이었고,대단한 선심이 아닐수 없었다.

그날 아침은 그처럼 그의 인심도 여느때와 달리 묘하게 좀 물렁해져
있었다.

"아이구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야마요시는 이마가 다다미
바닥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려댔다.

오쿠보의 서명에다가 낙관까지 된 휘호이니, 그것을 가지고 가서 자기의
집무실에 걸어놓을것 같으면 더없는 후광일 터이니 그럴수 밖에..
야마요시가 돌아가고, 아침 식사들 마친 오쿠보가 출근을 하려고 현관을
나서려 할 때였다.

"아빠, 나돌 갈거야. 앙- 앙-" 세살짜리 딸애가 칭얼대며 울기 시작했다.

오쿠보에게는 위로 여러명의 아들이 있었고, 맨끝에 딸애가 하나였다.

그래서 그 막내딸 유리코(백합자)를 그는 여간 귀여워하질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그 딸애의 재롱을 보는게 낙이었다.

출근때도 엄마를 따라 쪼르르 현관으로 나와서 고사리 같은 하얀 손을
흔들며 방글방글 웃는 유리코는 오쿠보의 기쁨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유리코가 울음을 터뜨린 것
이었다.

"아니, 우리 귀염이, 왜 이래? 응? 아빠하고 같이 가고싶어서 우는
거야?"

"나도 갈거야 - 앙-"

"허허허. 아빠는 출근하잖아. 출근하는데 어떻게 같이 가지?"

"앙- 앙- 같이 갈거야-"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우는데도 오쿠보는
"좋아, 자, 그럼 한번 같이 가보자구. 허허허." 웃으며 유리코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리고 현관 밖에 대기하고 있는 마차로 가서 함께 오르는 것이었다.

"저애가 오늘 아침엔 왜 저러지? 참 별일이네" 오쿠보와는 달리 부인은
딸애의 우는 꼴이 언짢은듯 살짝 찡그린 얼굴로 현관 앞까지 따라나갔다.

유리코를 안은채 마차에 올라앉은 오쿠보는 "자, 우리 귀염이, 지금부터
아빠하고 같이 가는 거야. 알겠지?" 하고는 마부에게 정원을 한 바퀴
돌도록 일렀다.

쌍두마차였다.

두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천천히 움직여 넓은 정원의 화단 사이를 이리
저리 빙빙 재미삼아 도는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