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마루마루진문 이라는 신문이 있었다.

서남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메이지 11년 4월 13일자의 그 신문에 참으로
진기한 기사가 실렸다.

"밤마다 유령에 시달리는 아내 죽인 고관" 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한 면을 다 차지한 그 기사에는 큼직하게 삽화까지 두 컷이 곁들여져
있었는데, 육군 장성복을 입은 사내가 군도를 빼들고 아리따운 젊은
아내를 내리치는 장면과 죽은 아내의 유령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사내가 자다가 놀라 고함을 지르며 뛰어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제목과 삽화만 보아도 눈에 번쩍 뜨이는 흥미진진한 기사가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가판이 불티나게 팔려 평소의 세배 네배나 더 찍어내는 법석을
떨었다.

이미 항간에 은밀히 소문이 돌고 있는 사건을 활자화한 폭로기사였다.

그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달전인 3월 어느날 밤, 태정관의 수뇌들 몇몇이 요정에서 주연을
벌였다.

밤이 깊도록 술을 마셔 취기가 도도해지자, 참의이며 개척장관인 구로다
기요다카가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술이면서 주사가 심한 사람이었다.

"야, 이토 이놈아, 좀 점잖게 놀라구.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게
뭐야? 계집애를 좋아해도 분수가 있지. 못봐주겠다구"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이토는 남달리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어서 곁에 앉아 술을 따르던 어린
게이샤를 무릎위에 올려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고 젖가슴을 애무해대다가,
이번에는 술을 자기 입안에 가득 머금어 가지고 그것을 게이샤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입으로 계집애에게 술을 먹이는 것이었다.

이토의 그런 공공연한 애희를 다른 사람들은 그저 예사로 보아 넘겼다.

저 친구 술이 들어가면 으레 저러니까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취기가 넘친 구로다는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보고 있질 못하겠다는
듯이 냅다 내뱉었던 것이다.

"말 조심해. 구로다. 이놈아가 뭐야?"

"이놈아 소리를 듣고도 남겠다구. 네 노는 꼬락서니를 보니."

"뭐 노는 꼬락서니? 저녀석이 술을 아가리로 안 처먹고,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뭣이 어쩌고 어째? 이새끼가 맛을 좀 봐야 알겠어!"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구로다는 허리에 찬 군도를 빼들려고 했다.

그는 육군 중장이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