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장은 이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다니는 가바야마가 가고시마 사람이며 사이고의 숭배자라는 것을 아는
터이라, 혹시 반란군 쪽으로 넘어갈까 걱정이 되어 그 점을 분명히
하려는 듯이 물었다.

가바야마는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그 통고문에 대한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했다.

"아무리 육군대장이지만 이 판국에 이런 식으로 통고를 한다는 것은 너무
오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소. 건방지기 짝이 없다구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거절할 수밖에 없지요"

"좋아요. 즉시 이걸 도로 돌려보내 버리자구요.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이오"

"예"

"그리고 즉각 전투태세로 들어가도록 하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구마모토성을 내주어서는 안되니까요.

사수작전(사수작전)을 펴야 해요.

그러나 우리 쪽에서 먼저 발포를 하는 일은 없도록. 알겠소?"

"예, 알겠습니다"

곧 그 통고문은 도로 사이고 진영으로 돌려보내지고, 진대군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통고문이 퇴짜를 맞고 반려되어 오자, 기리노는 발끈 핏대를 세웠다.

"그렇다면 좋다. 본때를 보여주는 수밖에."

구마모토 진대의 군사들을 기리노는 아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징병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칼이 뭔지도 모르는 농민이나 상인 공인
따위가 대부분인 오합지중이니, 어쩌면 하루아침에 너끈히 무너뜨려
버릴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기네는 불만에 가득 찬 사족들과 피끓는 사학교 학생들이니, 피에
굶주린 늑대들과 다름없지 않은가.

자신이 넘치고도 남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곧 공격을 개시하였다.

몇해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싸움이었다.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짐승들처럼 가고시마의 반군들은 맹렬한 기세로
구마모토성을 향해 진격해 갔다.

쾅! 콰쾅! 쿠쿵! 쿠쿵!.

포성이 진동했고, 팡! 파팡! 파팡! 탕탕탕 탕탕탕.

총성이 울려퍼졌다.

고요하던 구마모토의 아침이 별안간 발칵 뒤집히다시피 되고 말았다.

그렇게 기리노와 시노하라등 지휘관들은 사이고의 도착을 기다릴 것도
없이 전투를 시작해 버린 것이었다.

"동지들이 알아서 하오.내 몸을 동지들에게 맡기겠소"라고 했던 사이고의
말은 곧 그들에게 전쟁 수행의 권한을 위임한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