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친목모임을 30여년간 지속해왔다면 회원들간 우애와 협력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안이나 견해에 대한 공감대도 필시
심대할 것이다.

우리 우보산악회는 섬유를 매개로 똘똘뭉친 원로모임이다.

주로 서울대 섬유공학과 출신의 섬유산업 산증인들이 친목과 정보교류를
위해 형성한 모임이다.

당초 소걸음처럼 착실하게 일을 수행하자는 뜻을 담은 우보산악회로 출발
했으나 어감이 좋지않다고 해서 명칭을 변경했다. 20여명으로 구성된 우리
산악회는 평균연령이 환갑을 넘는 점외에도 여느 산악회와는 다른 점이
많다.

험난한 산을 정복하는 즐거움보다는 쓰레기를 치워 산을 가꾸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우리가 자주 오르는 산에 개나리 라일락 은행나무등을 심고
관리하는 일을 10년째 해오고 있다. 나무를 심는 만큼 우리의 산 벗은 늘어
나고 자연과의 교감, 생명에 대한 경외감도 충일해져 대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로선 깊은 감회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눈비와는 아랑곳없이 연중 한주도 빠지지 않고 일요일이면 산에 오르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10년전 도봉산 계곡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대홍수가
났던 날외에는 지금껏 한번도 등산을 거른 적이 없다.

다들 술을 즐겨 산중턱이나 계곡에서 소주잔이라도 들게되면 섬유와
인생을 소재로한 심도있는 토론을 벌이곤 한다.

우보산악회의 발족년월은 확실치 않다.

60년대초반께 경성공업전문학교 염직과(서울대 섬유공학과전신) 10회출신인
박순빈옹(88.초대회장)과 고 김의극선생 두분이 산악회를 만드셨다.

당시 등산과 낚시가 가장 흔한 취미생활로 꼽혔으나 끈끈한 인간관계를
위해선 힘들고 운동도 되는 등산이 좋다고 판단해 산악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창립직후 문진환 전장천 화학사장(작고) 심형보 보성무역사장, 변리사
사무소를 운영한 최석환 선생(작고.2대회장)이 동참했고 이어 필자가 입회,
현재 회장직을 맡고있다.

70년대 들어 상공부 간부중심의 한 등산팀이 해체되면서 윤두현 박경수
이창하씨등 국장급 젊은 회원들이 합류,모임은 추진력을 더해갔다.

이밖에 우지형 단국대명예교수 홍석붕 한국패션협회장,서울대 섬유공학과
의 이재곤 고석원 두 교수 등이 등산에 꼭꼭 참석하는 핵심 멤버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