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678) 제3부 정한론 : 대내전 (13)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구로다의 건의를 쾌히 받아들인 오쿠보는 그날밤 자기의 심복인 경시청장
가와지 도시요시를 집으로 불러 유능한 밀정들을 다수 가고시마로 파견하여
그곳 사태의 내막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명령했다.
가와지는 곧 빼어난 밀정 십수명을 가고시마로 밀파했고, 구마모토현의
경찰에도 극비로 지시를 내려 그곳에서도 밀정을 다수 가고시마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도록 조치했다.
폐도령에 이어 이번에는 금록공채발행조령이 공포되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전국의 모든 사족들은 자기가 속하는 번으로부터
양곡으로 봉록을 지급받았다.
그것은 세습이었다.
그래서 세록이라고도 했다.
많게는 몇천석, 적게는 십여석까지 그 지위의 고하에 따라 차등이
심했다.
번주부터가 몇만석, 몇십만석, 이런 식으로 막부로부터 그 석고가 매겨져
있었다.
유신정부가 들어서자 봉건시대의 소산인 그 사족들의 봉록제를 개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사족이라는 특권층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 계층의 해체를
위해서도 불가결한 조치였다.
폐번치현, 즉 번을 없애고 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한 뒤 일차적으로 양곡
으로 주던 사족들의 봉록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돈보다는 쌀로 받겠다고 반대하는 사족들이 많아 구습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법령으로 강제 집행하는 수밖에..."
오쿠보는 이렇게 내뱉고는 봉건체제의 유물인 세록제도를 단번에 폐지
하고, 금록공채를 발행하여 일시에 지불해 버리고마는 과격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 금록공채발행조령이 공고되자, 사족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존마게를 자르게 하고, 칼을 못 차고 다니게 하더니, 이번에는 먹고 살지도
못하게 하는구나 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현금도 아닌 공채라는 종이조각을 쥐어주고 말다니, 이건 숫제 굶어
죽으라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흥분들을 하였다.
구마모토현에서 맨 먼저 불만 사족들이 들고 일어나 현청을 덮치고,진대
(군사령부)를 공격했다.
신풍련이라는 사족의 한 무리였다.
신풍련은 양이사상에 투철하고, 신도를 광신하는, 말하자면 국수주의자
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었다.
우두머리는 오타 구로도모인데, 그는 신사의 신관이었다.
"신칙을 받들어 우리가 궐기하면 현청과 진대 따위 순식간에 점령할수
있다"
오타는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일어섰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5일자).
가와지 도시요시를 집으로 불러 유능한 밀정들을 다수 가고시마로 파견하여
그곳 사태의 내막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명령했다.
가와지는 곧 빼어난 밀정 십수명을 가고시마로 밀파했고, 구마모토현의
경찰에도 극비로 지시를 내려 그곳에서도 밀정을 다수 가고시마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도록 조치했다.
폐도령에 이어 이번에는 금록공채발행조령이 공포되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전국의 모든 사족들은 자기가 속하는 번으로부터
양곡으로 봉록을 지급받았다.
그것은 세습이었다.
그래서 세록이라고도 했다.
많게는 몇천석, 적게는 십여석까지 그 지위의 고하에 따라 차등이
심했다.
번주부터가 몇만석, 몇십만석, 이런 식으로 막부로부터 그 석고가 매겨져
있었다.
유신정부가 들어서자 봉건시대의 소산인 그 사족들의 봉록제를 개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사족이라는 특권층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 계층의 해체를
위해서도 불가결한 조치였다.
폐번치현, 즉 번을 없애고 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한 뒤 일차적으로 양곡
으로 주던 사족들의 봉록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돈보다는 쌀로 받겠다고 반대하는 사족들이 많아 구습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법령으로 강제 집행하는 수밖에..."
오쿠보는 이렇게 내뱉고는 봉건체제의 유물인 세록제도를 단번에 폐지
하고, 금록공채를 발행하여 일시에 지불해 버리고마는 과격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 금록공채발행조령이 공고되자, 사족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존마게를 자르게 하고, 칼을 못 차고 다니게 하더니, 이번에는 먹고 살지도
못하게 하는구나 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현금도 아닌 공채라는 종이조각을 쥐어주고 말다니, 이건 숫제 굶어
죽으라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흥분들을 하였다.
구마모토현에서 맨 먼저 불만 사족들이 들고 일어나 현청을 덮치고,진대
(군사령부)를 공격했다.
신풍련이라는 사족의 한 무리였다.
신풍련은 양이사상에 투철하고, 신도를 광신하는, 말하자면 국수주의자
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었다.
우두머리는 오타 구로도모인데, 그는 신사의 신관이었다.
"신칙을 받들어 우리가 궐기하면 현청과 진대 따위 순식간에 점령할수
있다"
오타는 이렇게 큰소리를 치며 일어섰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