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군의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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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때의 이야기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뒤 대학에서 추방돼 레지스탕스운동 지도자로
나섰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 Marc Bloch )는 1944년 나치에
체포돼 같은 해 6월16일 트레보에서 사형당했다.
그의 옆에는 16세의 소년이 떨며 서 있었다.
이 소년이 "아플까요"하고 묻자 블로크는 "아니야,전혀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그 소년을 팔로 따뜻이 감싸주고 "프랑스만세"를 외치면서
제일 먼저 땅에 쓰러졌다.
1차대전때도 종군했고 2차대전때 역시 현역에 복귀했다가 대위로 제대한
뒤 다시 레지스탕스운동에 앞장 섰던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군인이었다.
그는 늘 품속에 지니고 다니던 쪽지에다 자신이 죽으면 묘비에다
이렇게만 새겨 놓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진리를 사랑하라"( dilexit veritatem ) 조국과 국민을 위해 싸우다
죽은 어떤 직업군인의 최후보다 따뜻하고 떳떳하고 애국적인 죽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창군이래 국군가운데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군인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의 희생위에 세워진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우리는 안이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학교생도
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외치던 "생도의 신조"는 군부내 일부 정치장교
들의 출현으로 산산조각나고 겨우 이제서야 그 의미를 되찾으려하고 있다.
군의 사기가 급속히 떨어져 전역자가 급증하고 있고,그중 장교사기지수는
92년 71.7%에서 올해 66.4%로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의 현상이라니 더욱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한국에서는 예부터 문과 무는 "사람의 두팔" "독수리의 양 날개"와 같은
것이라고 해서 똑같이 중시된듯 해고 실제로는 문에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사림정치가 한창이었던 중종5년(1510) "삼포왜란"이 일어났을때 아무
준비없이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던 조정에서는 허겁지겁 실직해 있던
황형을 재기용했다.
그때 그가 집문앞엘 나와 팔뚝을 걷어 불이며 내뱉았다는 푸념을
왕조시대 문무의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있다.
"나는 가물때의 나막신 같아서 장마철이나 당해야 쓰일 뿐이다" 군의
사기를 북돋는 길은 군인의 복지향상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군대를
사랑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이제 군대는 더이상 5공 6공의 군대는 아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8일자).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뒤 대학에서 추방돼 레지스탕스운동 지도자로
나섰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 Marc Bloch )는 1944년 나치에
체포돼 같은 해 6월16일 트레보에서 사형당했다.
그의 옆에는 16세의 소년이 떨며 서 있었다.
이 소년이 "아플까요"하고 묻자 블로크는 "아니야,전혀 아프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그 소년을 팔로 따뜻이 감싸주고 "프랑스만세"를 외치면서
제일 먼저 땅에 쓰러졌다.
1차대전때도 종군했고 2차대전때 역시 현역에 복귀했다가 대위로 제대한
뒤 다시 레지스탕스운동에 앞장 섰던 그는 학자이기 이전에 군인이었다.
그는 늘 품속에 지니고 다니던 쪽지에다 자신이 죽으면 묘비에다
이렇게만 새겨 놓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진리를 사랑하라"( dilexit veritatem ) 조국과 국민을 위해 싸우다
죽은 어떤 직업군인의 최후보다 따뜻하고 떳떳하고 애국적인 죽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창군이래 국군가운데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군인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의 희생위에 세워진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우리는 안이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학교생도
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외치던 "생도의 신조"는 군부내 일부 정치장교
들의 출현으로 산산조각나고 겨우 이제서야 그 의미를 되찾으려하고 있다.
군의 사기가 급속히 떨어져 전역자가 급증하고 있고,그중 장교사기지수는
92년 71.7%에서 올해 66.4%로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의 현상이라니 더욱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한국에서는 예부터 문과 무는 "사람의 두팔" "독수리의 양 날개"와 같은
것이라고 해서 똑같이 중시된듯 해고 실제로는 문에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사림정치가 한창이었던 중종5년(1510) "삼포왜란"이 일어났을때 아무
준비없이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던 조정에서는 허겁지겁 실직해 있던
황형을 재기용했다.
그때 그가 집문앞엘 나와 팔뚝을 걷어 불이며 내뱉았다는 푸념을
왕조시대 문무의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있다.
"나는 가물때의 나막신 같아서 장마철이나 당해야 쓰일 뿐이다" 군의
사기를 북돋는 길은 군인의 복지향상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군대를
사랑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이제 군대는 더이상 5공 6공의 군대는 아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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