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는 어느덧 50세였다.

권좌에서 물러나 가고시마로 돌아온 지도 3년째가 되었다.

본래 술을 많이 마시는 체질이 아니었으나,낙향을 한 뒤로는 울적할
때면 곧잘 혼자서도 술을 입에 대게 되어 이제는 주량이 보통을 넘었다.

50줄에 들어선 사이고는 주기가 오르면 속에 괴어있는 우울한 것을
곧잘 혼자서 중얼중얼 밖으로 내뿜는 버릇이 있었다.

"돼먹지 않았어. 그녀석 돼먹지 않았다니까" 자작자음을 하고 있던
사이고는 불쑥 내뱉었다.

그 녀석이란 오쿠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오쿠보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사이고는 속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을 느껴오는 터였다.

정한론 정변으로 사표를 내던지고 낙향한 직후는 말할 것도 없고,그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체념을 하려고 애를 써서 조금 그 증오가 엷어지려고
하면 또 심사를 자극하는 일을 그가 일으키곤 해서 도무지 마음 편한
때가 없었다.

사가의 난을 직접 자기가 나서서 진압하고,에도 신페이를 무자비하게
처형한 일이며,내치 우선을 내세워 그처럼 해외 정벌을 반대하더니,곧
대만 원정을 강행한 일,그리고 이번에는 조선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수호조약을 맺다니.

사이고 자신이 전권대사로 가려고 그처럼 염원하여 각의에서 결정까지
했던 일을 기어이 뒤집어 버리기까지 해놓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입으로는 내치 우선이니 뭐니 하고 나불거렸으나,실상
속으로는 사이고 자신을 밀어내고,모든 일을 자기가 맡아서 해나가려는
심보였던게 아니고 무엇인가.

"세상에 그런 녀석이 다 있다니. 그런 녀석을 나는 어릴 때부터
친동생처럼 대해 왔으니. 아- 으-"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는 듯 사이고는 또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열린 방문 밖으로 멀리 서녘 하늘이 서서히 노을져 가고 있었다.

그 봄노을을 멀뚱히 바라보는 사이고의 유난히 부리부리한 두 눈에
술기운과 함께 어떤 처연하면서도 섬뜩한 그런 빛이 어리고 있었다.

낙향을 하여 한동안 농사와 수렵으로 한가롭게 나날을 보내던 사이고는
그뒤 계획했던대로 교육사업에 손을 댔다.

사학교의 설립이 그것이었다. 사학교란 문자 그대로 사설 학교였다.

사이고가 세운 학교인데,그것이 설립된 것은 대만 정벌이 감행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러니까 동생 쓰쿠미치가 대만에 가서 원주민을 토벌하고 있을 때에
형인 사이고는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