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이 나쁜 나귀는 귀뚜라미의 아름다운 목청을 닮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어느날 귀뚜라미를 찾아가 대체 무엇을 먹길래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귀뚜라미는 풀잎의 이슬을 먹는다고 대답했다.

어리석은 나귀는 그후 자기도 귀뚜라미처럼 이슬만 받아 먹으며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귀는 하루하루 여위어가다 마침내는 굶어죽고 말았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기분수를 지킨다는 것은 자기본연의 생활방식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자이거나 각자 자기본연의 생활영역에 충실하여
이처럼 과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 구석 구석에는 "몰라도 아는체" "업어도 있는 체"하는
허세가 난무하면서 우리들의 의식을 좀먹어 왔다.

특히 일부 신흥 부유층의 무분별하고 도에 넘치는 과소비는 서민층의
자기현시욕까지 자극해 도처에 "황새와 뱁새"의 우화를 만들어 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행복은 결코 돈으로는 살수 없는 삶의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개개인의 만족도는 이른바 불교의 "일절유심조"(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다만 행복을 보다 구체화하는 방법으로서 "후진국의 미래"의 저자인
"스테일러"(staley)가 표현한 행복방정식을 참고해 볼필요가 있다.

"행복=소유/욕망"보다 큰 행복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소유를 증가시킬
수도 있고, 소극적으로 욕망을 줄여서 적은 소유로 만족하는 방법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은 생의 원동력이란 의미에서 크고 강할수록 좋다.

그러나 순리대로 최선을 다해서 얻을수 있는 소유에 한계가 있다면 욕망을
줄여서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행복이란 오늘만들기는 각자 마음먹기에 달려있음을 다시금 반추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