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의 혈관이라는 도매업에 대기업이 잇달아 뛰어들고 있다.

90년대 들어 선경유통 콜롬버스 TMC(해태제과 도매사업부)가 도매업에
진출했고 최근엔진로 코오롱 동양제과 미원그룹 제일제당 등도 참여를
서두르고 있다.

제조업체에 계열화되어 있던 기존 대리점업계도 전속체제에 반발
종합도매업으로 변신을 꾀하는 한편 연쇄화업체 및 대형 체인본부들도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도매업계의 구조개편 바람은 오는 96년 유통시장 완전개방과 맞물리며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해태 미원 진로 제일제당 등 전국적인 대리점망을
가진 식품업체들의 움직임이다.

이들은 제조부문의 생산성 증가가 한계에 부딪히자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중소업체에의 하청으로 돌리고 이에 따라 여유가 생긴 조직과 자금을
활용하여 도소매를 겸한 종합판매회사로 탈바꿈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유한 물류창고와 영업조직을 이용하면 물류합리화는 물론
자사상품외에 경쟁사제품까지 판매 유통망 장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창호선경유통사장은 "미국의 경우 전체 생필품의 절반이상을 전문
도매업체들이 유통시키고 있다"며 "도매업은 매출이 안정된데다 영업
이익의 발생후 급속도로 수익이 커져가는게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은 특히 과세특례혜택을 노린 소매상들의 세금계산서 기피와
무자료시장 제조업체의 납품거부 등 그동안 종합도매업의 입지를 위협
해온 유통단계의 난맥상이 96년 유통시장이 완전개방되면 의외로 쉽게
풀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국의 유통업체들이 국민감정이나 국내의 높은 땅값을 의식,당분간
소매업보다는 도매업형태로 국내시장 공략에 나서리라는 전망도
시장선점경쟁을 불붙이고 있다.

진로그룹은 올해 편의점사업을 위해 설립한 진로베스토아를 기반으로
그룹내 물류기능을 통합,도매업에서 권토중래할 계획이다.

진로그룹은 지난 88년 진로도매센터를 세우며 도매업에 진출한 바 있으나
중도하차한 바 있다.

장진호회장은 최근 베스토아 1호점의 개점식에 참석,"책방 약국 레코드점
등 업종간의 경계가 무너져가고 업태가 복합화돼갈수록 도매업의 필요성이
커진다"는 소신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제과가 올해초 계열사인 동양마트(편의점 바이더웨이의 운영업체)와
공동으로 유통사업팀을 발족시킨 것도 주목되는 변화다.

동양제과는 동양마트의 일본쪽 제휴선인 선크스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으며
1차식품을 비롯 식음료 계통의 유통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미원그룹 역시 계열사의 물류기능을 통합, 도매물류사업에 진출한다는
구상인데 관계사인 서해유통의 향후 역할이 주목된다.

현재 (주)미원의 원료수송을담당하고 있는 서해유통은 내년부터는 소매점
에의 배송사업도 개시,해태제과의TMC와 비슷한 기능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그룹도 수퍼마켓인 다마트의 물류창고가 위치한 구로동 봉제창고
부지를 물류센터로 전환할 것을 검토중이며 제일제당 대우 삼성물산 등도
도매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양제과 유통사업팀의 정진만부장은 "유통시장이 개방되면 누가 소매점
에 싸고 양질의 제품을 공급해주느냐가 승패의 열쇠가 된다"며 지금부터
도매업을 준비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지게 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