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사이고 다카모리가 순국을 할 각오로 조선국에 전권대사로 가려고
그처럼 노력을 기울이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막강한 권력의
자리를 내던지고서 낙향을 하고 말았었는데, 그 임무를 이번에는 기도가
간단히 떠맡게 된 것이다.

기도는 조슈번 출신으로 막부 타도와 왕정복고에 큰 공이 있어서 사이고,
오쿠보와 더불어 메이지유신의 삼걸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무게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전권대사로 가기를 자청하니,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했다.

곧 다리에 병이 생겨 걷지를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대신 육군중장이며 개척장관인 구로다 기요다카를 전권대사로 선임했다.

만약 일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전쟁으로 돌입해야 하기 때문에 현역
군인이 아무래도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노우에 가오루를 부대사로 임명하였다.

외무경인 데라지마는 구로다 전권대사가 조선국으로 출발하기 앞서 당사국
인 조선국은 물론이고, 청나라와 구미 각국의 공사들에게 외교 조치로 그
사실을 알렸다.

조선국에는 선보사를 동래부에 보내어 명년 1월중순에 특명전권변리 대신
구로다 기요다카를 강화도에 파견하겠다는 통고를 했고, 청나라에는 새로
그곳 공사로 부임하는 모리 아리노리를 시켜서 총서아문에 강화도사건의
내막을 설명하고, 그 문제의 담판을 위해 전권대사를 파견한다는 사실을
알려 청나라의 반응을 탐지토록 했다.

그리고 서양 여러 나라의 공사는 자기가 한사람 한사람 개별적으로 만나
얘기하기로 하였다.

북경으로 부임해간 모리는 총서아문으로 문상 총서대신을 방문하여 지시를
받은대로 강화도사건을 설명하고, 전권대사를 파견한다는 사실을 알린
다음,

"이 문제에 대해서 귀국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고 물었다.

문상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조선국은 모든 정치를 자기네가
알아서 처리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우리는 조선국이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속국이라고 볼수 있지만, 좌우간 우리는 조선국의 내정에 대해서 간섭을
안한다니까요"

문상의 표정에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해 대만문제로 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조선문제로 또 일본과 밀고
당기는 일에 끼여들고 싶지 않은게 분명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