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국가들이 계획경제의 구각을 깨뜨리고 시장경제로 나선지 5년이
지났다.

지난 89년 11월 9일의 베를린장벽붕괴는 동유럽전역에 질풍노도의 정치혁명
회오리를 불러왔다.

정치혁명은 곧바로 경제개혁으로 연결되면서 동유럽은 서구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대대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그후 계획경제의 잔재와 새로운 시장경제의 두 경제체제에 끼여 한동안
비틀거려 왔던 동유럽경제가 마침내 지난해를 고비로 회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직 갈길도 멀고 해야할 일도 많지만 개혁초기의 혼란과 불안을 딛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유엔이나 국제통화기금의 중간평가이다.

동유럽의 개혁은 정치와 경제부문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부분적인 개혁이 아니라 체제자체가 바뀌는 혁명적인 변화이다.

지난 89년 이후 신지배엘리트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동유럽의 경제개혁은
93년을 기점으로 안정된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93년까지의 4년은 제1단계 경제계혁이라 할수 있다.

이 기간중에는 급격한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따른 혼란으로 마이너스성장에
물가폭등, 재정적자급증의 역효과가 발생했다.

이 4년은 혼란속에 경제기반을 닦는 시기였다.

이제 94년을 기점으로 동유럽경제개혁은 제2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정치사회적 혼란과 경제침체라는 커다란 대가를 지불했으나 올해
부터는 개혁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결실기로 볼수 있다.

개혁직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던 산업생산은 1~2년전부터 감소추세가
둔화되거나 플러스로 돌아섰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물가도 잡히기 시작했고 국영기업의 민영화작업도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외국기업의 투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유럽의 경제개혁은 크게 3개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격통제해제와 시장메커니즘의 도입 <>국영기업의 민영화 <>적극적인
외자유치정책등이다.

이 3대 기본줄기속에서 재정긴축, 기업에 대한 국가보조금지급억제, 공공
부문의 임금규제, 금리인상, 수출입자유화, 물질적인 인센티브부여등이
거의 모든 동유럽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개혁의 틀이 잡혀가고 있는 가운데 폴란드의 경제개혁성과가
가장 돋보인다.

지난 90년 점진적인 개혁이 아닌 일시에 모든 것을 바꾸는 충격요법을
썼던 이 나라는 처음 몇년간은 극심한 인플레와 경기침체의 쓴 맛을 톡톡히
보았다.

89년후 91년까지는 연평균 마이너스 5%의 경기침체를 겪었던 폴란드는
92년부터 플러스성장으로 돌아섰다.

물가상승률은 두자리숫자로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개혁초기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실업자수는 줄지 않아 범죄가 늘어나는등의 사회불안요소는 상존하고
있지만 이도 몇년내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와 달리 점진적인 개혁의 대표인 헝가리도 개혁초기에는 폴란드처럼
경제가 침쳬하고 물가가 폭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지난 92년까지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으며 연간 물가상승률도 20%이상에
달했다.

지난해부터 상황이 호전돼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동유럽국가중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돼 있는 헝가리는 이러한 장점을 이용,
적극적인 외자유치에 나선 결과 89~93년사이에 모두 70여억달러의 외국자본
을 유치했다.

이는 동유럽국가중 최대의 외자유치액으로 헝가리는 이 외자를 바탕으로
착실하게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아에 체코슬로바키에서 분리돼 나온 체크도 올들어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체크는 특히 실업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현재 체크의 실업률은 약 3%로 동유럽은 물론 전유럽에서 가장 낮다.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원만히 이루어져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70%가량이 민간기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올해안으로 민영화가 대충 마무리되면 경제성장률이 개혁이후 처음으로
플러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체크정부는 요즘 외국인 투자가 너무 많아 인플레억제및 통화관리를 위해
오히려 외국인 자본유입을 억제하고 있는 형편이다.

슬로바키아는 체크에 비해 공업화기반이 취약, 올해도 지난 4년처럼
마이너스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내년에는 성장률이 낮기는 하겠지만 플러스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개혁이 시작된지 만 5년이 지난 지금 동유럽경제는 총체적으로 볼때
출구가 보이는 터널의 중간부분에 도달해 있는 상황이다.

유엔은 올해 동유럽의 전체 경제성장률이 90년대들어 처음으로 플러스를
기록, 1%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유럽의 경제개혁은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에 "개혁이 성공이냐
아니냐"로 단정적으로 규정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다.

2~3년은 더 지나야 동유럽의 개혁을 정확히 평가할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앞으로 동유럽의 경제개혁이 성공으로 귀결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외국자본으로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한 성장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순수한 국내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다.

국가주도의 민영화계획과 상충되는 자연발생적인 민간기업간의 영역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경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일도 시급한 현안이다.

안정적인 세입확보를 위해 조세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 인플레율이 한자리숫자로 안정되고 실업자도
줄어들어야만 동유럽경제개혁은 진정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들을수 있을
것이다.

< 이정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