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믿고 거래할수 있는 신용사회가 정착돼야 합니다"

고집스런 지방토착기업인으로 광주/전남지역의 생산도시화운동에 앞장서온
성암 신태호 동화석유회장(73)은 신용사회가 정착돼야 사회안정도 이뤄질수
있다고 강조한다.

1952년 대동한천수출주식회사를 만들어 일찌감치 수출전선에 뛰어든 신회장
은 지난 40여년동안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온 지방중소기업인
이다.

그는 특히 지난 61년부터 75년까지 광주상의부회장, 76년부터 91년까지
광주상의회장을 역임하면서 호남지역 대표적 공업단지인 본촌/송암과 하남
공단건설을 주도하는 등 광주권 생산도시화운동을 평생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신회장을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성암빌딩 회장실에서 만나보았다.

-무척 많은 "회장"감투를 쓰고 계신것 같습니다.

<> 신회장 =젊은 나이(26세)에 사업을 시작하고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지만
그런대로 성실한 기업경영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보잘것없는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업종도 다양화했고 기업경영뿐 아니라
여러가지 지역사업을 벌이다 보니까 "회장감투"가 많은것 같습니다.
(신회장은 모기업이랄수 있는 동화석유를 비롯 성암산업 성암정공 광양상호
신용금고 성암광학 성암상운 전일금고등 관련기업의 회장직 뿐아니라
대한상의부회장과 한국로타리총재단 의장등을 역임했고 석유협회부회장
만대학원이사장 성암장학재단이사장 왕인박사현창회이사장 스리랑카명예
영사등을 맡고 있다)

-호남 특히 광주지역의 공업화에 남다른 관심과 정열을 쏟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 신회장 =원래 호남지역이 농업위주의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70년대의 급속한 공업화과정에서 더욱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박정권시절에 이런저런 연유로 호남푸대접이란 얘기들도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70년대초반의 광주는 그야말로 소비도시고 실업자도시였습니다.

금호그룹설립자이신 박인천회장의 뒤를 이어 제가 76년에 광주상의회장에
취임할당시 광주생활상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기억으로는 당시 전남도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3만8천원으로 전국에서 최하위였습니다.

전북이 14만5천원으로 전남보다 약간 많았고 강원도가 14만8천원으로
그보다 높아 꼴찌로 1.2.3등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광주인구는 63만명이었는데 다방이 4백40개나 되었어요. 다방에는
사람들이 우글거렸지요.

실업자가 많았던 탓입니다. 다방같은 곳에 여럿이 모여앉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자연히 불평불만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데모도 하게 되고, 참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이러다가는 광주의 장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어 "생산도시화 운동"을
펼치게된 것이지요.

-생산도시화 운동이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 신회장 =생산공장을 많이 만드는 것이지요. 제가 상공회의소회장에
취임하면서 3가지 일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첫째는 광주의 생산도시화운동이고 또하나는 신용사회의 건설, 다른하나는
광주상의회관 건립사업이었습니다.

그때 생산도시화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10년내에 5백만평의 공업단지
를 만들고 5백개의 중소기업을 창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두들 비웃기도 하고 반대도 많았습니다. 반대는 "왜 공해도시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지요.

관청이나 지도층은 물론 지역경제인들을 설득시켜 공업단지조성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광주인근 본촌.송암지역의 45만평을 후보지로 잡고 추진하는데 지역경제인
1백5명이 평당 2만원씩의 자금을 갹출해서 땅을 사고 광주시와 협조해서
81년에 마무리지었습니다.

민간인들이 민간자금으로 공업단지를 만든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본촌.송암공단을 추진하는 도중에 IBRD(세계은행)사업으로 광주권개발
계획이 성안되고 있었습니다.

당초 이계획시안에는 공업단지건설계획이 없었습니다. 공업단지를 만들어
보아야 입주할 업체가 없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또 뛰었지요. 공업단지를 1백만평정도는 더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
하면서 자체적인 발전계획등을 제시하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계획에 포함돼 현재의 하남공업단지가 건설됐는데 막상 공단을
만들어 놓고 보니까 기업들이 입주를 하지 않아 곤욕을 치렀습니다.

제 스스로 럭키금성그룹을 시작으로 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찾아
다니면서 호소도 하고 설득도 해보았습니다만 처음엔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대기업중에서는 럭키가 맨처음 입주를 하게됐고 그뒤 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지금은 연간 생산액이 1조원을 넘고 고용인원도 1만6천명이
넘는 큰 공업단지로 호남의 핵심생산기지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광양의 제철소나 여타지역의 공업단지들도 많아 서해안시대를 맞아
급속한 발전이 기대돼 뒷전으로 물러난 늙은이이긴 하지만 감회가 깊습니다.

-신용사회정착운동은 어떻게 되었나요.

<> 신회장 =서로 믿고 사는 사회를 만들자해서 상거래대금 "주고 받는날"
운동을 시작했었습니다.

매월 말일을 "주고 받는날"로 정하고 범시민운동으로 시작해 상당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버스나 택시들이 "주고 받는 날"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고 KBS가
전국운동으로 확산시키기도 했습니다.

우리회사는 지금도 매월 20일을 주고 받는날로 정해 거래대금청산은 이날
처리합니다.

틀림없이 주니까 돈달라는 소리도 안하고 받으러 오지도 않습니다. 모두
계좌로 송금하니까 신뢰도 쌓이고 여러가지 절약도 되고 합니다.

이런데서부터 상호 믿음이 나오고 사회가 안정된다고 봅니다. 경제신문에서
이런 캠페인을 벌여 주어야 합니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어려움도 많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공업화가 뒤진 호남지역에서의 경영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과제도 이런 점에서 나온것입니다.
지역균형발전문제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신회장 =국제화시대를 맞아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뒤졌던 서남해안지역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같은 지역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로 항만건설등 사회간접자본시설
의 확충과 함께 첨단기지와 광주과학기술원 조기완공을 통한 산.학.연협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또한 지방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정책적배려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예컨대 각종 인허가 절차간소화나 금융이용 기획확충등이 그런것들입니다.

특히 지방금융활성화를 위한 획기적 개선방안도 시급합니다. 그래야만
지방중소기업창업이 늘고 소득수준도 올라가게 되겠지요.

-그동안 생활해 오시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 신회장 =기업을 하면서는 큰 어려움에 봉착해본 것은 많지 않습니다.
욕심내지않고 성실하게 산다는 일념으로 해왔기 때문에 항상 중소기업인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보람된 사업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수분지족"을 생활신조로 삼고 근면.성실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나 자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역사회발전과 문화사업등을 많이 추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구상같은 것은 없습니까.

<> 신회장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보다는 시작한 여러가지 일들을 보다
알차게 만드는게 급선무지요.

가장 우선적인 일로는 문화사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문화사업은
장학사업이 주를 이뤄왔습니다만 내년부터는 밝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현재 장학기금은 21억원이 조성돼있고 5천여명에게 장학금혜택을
주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장학사업도 학비보조보다는 고급인재양성을 위해 의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전문인력의 해외연수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 장학재단을 문화재단으로 전환시켜 향토문화발굴과 계승발전에도 작은
힘이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작년에 성암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됐습니다만 앞으로 "광주권 생산
도시화대상" "향토문화대상"등을 제정하고 점진적으로 재단규모를 늘려
문화단체에 대한 연구비등도 지급할까 합니다.

우리사회가 밝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덕성이 회복돼야 합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도덕성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할까 합니다.

예컨대 광주지역의 "원로광장"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원로들로 하여금
좋은 얘기들을 들려주도록 하는 강좌를 개설하는등의 일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우선 우리회사에서는 내년부터 모든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명심보감을 강의하도록 했습니다.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주축이돼서 여러가지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미력한 힘이라서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구상을 실천하시려면 체력도 뒷받침돼야 할텐데요.

<> 신회장 =나이는 좀 먹었지만 젊은이 못지 않습니다.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는 것도 없습니다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좋습니다.

술 담배도 전혀 안하고요.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역경제발전을 이끈 공로로 광주시는 하남공단내에 "광주권생산도시화의
탑"을 세워 놓았고 광주상권회관 앞에는 신회장의 송공비가 세워져 있다)

< 대담 = 이계민 부국장대우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