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회사가 잿더미로 변한다면, 회사가 시공한 다리나 아파트가
무너져 내려 많은 인명피해를 낸다면, 격렬한 노사분규가 일어난다면,
판매중인 제품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돼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같은 불행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유쾌한 일이 될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위기관리(Risk Management)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우리
기업들도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등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사고들이 최근 잇따르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그 대비책을 생각해 둠으로써 불가항력적인
사고를 당하더라도 빠른 사고수습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등지에서는 일반화된 경영기법이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오히려 이를 기피하는 경향이었다.

변호사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송이 많은 미국의 경우 기업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고발 당하기 일쑤고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는 습관이 붙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회사경영
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위기관리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다리를 하나 사도 "밟을 때 조심하시오" "미끄러 지기
쉽습니다"등의 너무나 상식적인 주의 문구가 닥지닥지 붙어있는 것을 볼수
있다.

하찬게 보아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것들이 사고를 염두에 두고 미리
예방하자는 위기관리 경영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나 일본등 정경유착이 가능한 나라에서는 왠만한 위기는
정치권의 힘으로 적당히 모면할 수 있었다.

뿐아니라 아무리 큰사고나 실수라도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고 또 실추된
체면도 회복될수 있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위기관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낙관적인 사고에 젖은 경영진들은 위기상황을
생각한다는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회사가 정말로 위기상황에 처한 것 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기피해 왔다.

따라서 항공사등 늘상 사고를 염두에 둬야 하는 몇몇업종을 제외하고는
이를 외면해 왔던 것이다.

지난해 생산성본부에서는 위기관리를 주제로 한 유료강좌를 개설하려
했었다.

그러나 "왜 그런 재수없는 일을 하려고 하느냐"며 경영자들의 반응이
신통치않아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능률협회커설팅에서도 최근 위기관리 컨설팅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나
수요가 없을 것 같아 아직 실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던 우리기업들도 이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굳이 성수대교와 같은 대형 사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기업환경이 위기관리
경영을 강요하고 있다.

기업환경에 대한 관의 규제는 점차 완화되고 있는 추세이나 대신 기업이
만든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시망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더욱이 국제화다 개방화다하여 기업들은 시비가 잦은 구미지역 소비자들을
상대해야 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같은 추세로 미루어 볼때 우리나라 기업들도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경영
혁신의 필수과목으로 채택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위기관리경영을 도입했다고해서 만사가 해결될 것으러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최근 홍콩에서 발행된 월간 아시안 비지니스지는 한 기업의 위기관리
성공사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

"쿠알라룸프르 시내 일부지역 주민들이 부근에 버려진 산업폐기물로
피부병을 앓고 있다"는 기사가 말레이지아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이 폐기물의 출처인 일본계 전자회사인 N사 최고경영자는 직접 현장에
나와 주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또 기자들에게도 이 문제가 이렇게 노출되지 않았다면 앞으로 더 큰 피해를
내게 됐을 것이라며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와함께 폐기물처리 용역업체의 잘못임을 규명하는 자료를 신속히 제시
했다.

이같은 조치로 기업이미지는 쉽게 회복됐으며 영업에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았다.

N사의 최고경영자가 정직했기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만일의 사태를 위해 평소에 준비해온 위기관리 경영이 신속한 사태처리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기관리를 도입하더라도 실제위기를 맞게 될 경우 최고경영자가 진솔하게
모든 것을 매스컴에 공개할 수있는 용기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이기사는 강조하고 있다.

위기관리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체크포인트를 소개한다.

주변에 신뢰를 구축하고 전담팀을 구성하며 정기적인 훈련및 언론을
담당할 대변인을 선정해 두는 것이 위기가 닥치기 전에 해야할 사항들이다.

일단 위기상황을 맞게되면 정보 취합과 유언비어를 차단하고 언론과
직원들에게 사실대로 공개한후 신속히 사고수습에 임하라.

사고가 나면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감추려는데 익숙한 기업들은 한번쯤
되씹어 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