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수한 말을 하고있다. 산은 어떠한
고난에서도 의연하며 너그럽게 포용하고 스스로 복원한다.

천둥과 비바람속에서 인고하다가 구름거친 태양사이로 찬연히 거기 우뚝
서있는 그러한 산을 나는 경외한다.

적외선이 듬뿍 들어있는 굴절되지 않은 햇볕이 있고,산림속의 정기를
가득히 품은 축축하고 상쾌한 공기가 있는가 하면,전인미답의 산속
깊은 골속에 누년을 두고 흘러내린 바위밑 생수가 있어 좋다.

오를때면 숨이 턱에 차서 극한의 심호흡과 비오듯 흐르는 땀은 체내의
축적된 모든 노폐물을 한꺼번에 토해내서 좋다.

우리 모임은 학생운동의 발상지인 광주서중 35회로서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휴일이면 버스터미널이나 역에서 아침 7시경 만난다.

산을 진정 사랑하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등산사부이며 항상 든든한
우리 모임의 대장인 무쇠고집 김동현 신탁은행차장을 필두로 험한
길을 뚫는데 주저함이 없고,오랜 산행 끝에도 시간이 남았다면서
늘 계속 오르기를 고집하는 애연가 김시중 노동청 근로감독관,

등산중 잠시 쉴때나 초만원 중앙선 열차속에서도 약간의 기댈곳만
있으면 순식간에 코를 골다가도 산은 날렵하게 타는 너그러운 작은거인
박찬주회계사,

천리를 통함에 막힘이 없고 지금 이시대를 사는 우리가 골프를 쳐서는
안되는 이유를 설파할수 있는 몇안되는,정의감 투철한 주원석변호사,
농구의 명가드였고 선망의 학교 교기수였으며 검소함과 날카로움을
겸비한 박삼구 아시아나항공사장,

작은고추가 맵다는 것을 실증하는듯 투박하면서도 직선적으로 정곡을
찌르며 호방명쾌한 판단이 항시 돗보이는 김상기고법부장판사,발목을
삔후 골프로 전향했으나 아직 미련을 버리지 않고 참가하여 깊고 정교한
논리를,울리는 듯한 바리톤 목소리로 산의 한구석을 메꾸어주는 백이호
나산건설부회장,

소년등과하여 20대에 세무서장을 지냈고 산 타는 것도 학문하듯이
천재성과 꾸준함을 가지고 산행을 빛내주고 있는 박인주국제대교수,
동문골프회장으로 자신의 코골이 심함을 익히 깨닫고 1박산행시 스스로
다른 방을 사용하는 높은 도덕성을 보여준 의지의 사나이 손지원
환주상사사장이 있다.

필자는 11년전 관악산을 시작으로 북한산등 서울의 산을 4백여회 올랐고
5년전부터는 명지산등 해발 6백m이상의 경기도 산을 빠짐없이 가 보았고
지금은 설악산등 전국 천m 이상의 산행이 1백회를 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