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포성이 우연인지 고의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으나,오쿠보는 십중팔구
고의이리라 생각했다.

우연히 그 시각에 회담장을 향해서 대포를 쏘아댈 턱이 없다 싶었다.

근위군 포병부대가 그 근처에 있다 하더라도 포격 연습을 영내에서 할
턱이 만무한 것이다.

이놈들이 위협을 하는구나 하고 단정을 한 오쿠보는 다음 회담때 한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청나라 측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는게 전쟁을 은근히 내비치는 것 같으니,
그렇다면 이쪽도 일전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다고 배짱을 정했던 것이다.

이미 독재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오쿠보지만,이번에 청나라에 올 때도
형식적이나마 전권을 위임받는 절차를 거쳐 그것을 공식적으로 손아귀에
쥐고 출발했다.

그러니까 전쟁이든 평화적 해결이든 자기 독단으로 결정을 할수가 있는
것이었다.

오쿠보는 세번째 회담도 여전히 아무런 진척이 없자 선언을 하듯
말했다.

"우리의 요구를 귀측에서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니,더는 회담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회담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본으로
돌아갈까 해요. 그 다음에 일어나는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귀측에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두겠어요"

전쟁 불사를 내비치는 말이었다. 총서대신 문상이 대뜸 받아 넘겼다.

"귀국한 뒤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잘 알수가 없으나,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측에 있어요. 책임이란 언제나 먼저
사태를 일으키는 측에 돌아가는 법이니까요"

"그렇지않아요. 일으키는 측이 아니라,사태를 일으키게 한 측에
돌아가는 거예요. 원인을 제공한 측에 책임이 있다 그 말이에요"

"우리는 아무런 원인을 제공한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귀국할 때는
대만을 침공한 군대도 함께 데리고 돌아가주기 바라오"

회담 결렬 선언과 마찬가지여서, "이제 얘기는 끝났소" 하고 오쿠보는
성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담이 결렬되고,오쿠보 일행이 귀국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자,섭정인
공친왕은 내심 당황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이어질게 뻔했던 것이다.

"음- 이 일을 어떻게 하나.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공친왕은 쓰디쓰게
입맛을 다셨다.

전쟁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천진에
있는 이홍장 역시 전쟁은 반대였다.

그래서 그는 대만에 파견되어 있는 휘하 부대의 사령관에게 먼저
전쟁을 도발하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지시를 내려놓고 있는 터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