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08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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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번뇌가 없는 사람이 없다. 번뇌는 갖가지 욕심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것을 극복해 낼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즉 지혜다.
불교경천인 열반경에도 "지혜가 있을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다"고 불타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지혜로 극복되어야할 번뇌를 108가지로 나눈다.
눈 귀 코 혀 피부 뜻등의 육근과 그 대상인 빛깔 소리 냄새 맛 느낌
법등의 육진이 서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번뇌들이다.
육근이 육진에 접촉될때 좋고 나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세가지
인식작용을 하여 18번뇌(6x3=18)가 된다.
또 이 세가지 인식작용에서 즐겁고 괴롭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세가지 마음이 생겨나는데 이것들이 육근과 육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육식과 인식작용을 하여 또다른 18번뇌를 만들어 낸다.
이들 36가지 번뇌에 전생 속세 내세등 3가지 세계를 곱하면 108번뇌가
된다.
이것이 백팔번뇌의 일반적인 풀이이나 그 바탕에 깊은 교리를 깔고
있는 접근방법도 있다.
어떻게 수행을 하여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하는 수행 실천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잘못된 것인줄만 깨달게 되면 곧 없어질수
있는 88가지 번뇌, 나쁜줄 알면서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물욕 명예욕
색욕 질투심 시기김등 10가지 번뇌, 이들 근본번죄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죄등을 합하여 백팔번뇌를 도출해 낸다.
불자들은 이들 번뇌를 벗어나고자 108이라는 숫자를 원용한 몇가지
종교의식을 만들어 냈다.
염불과 독경을 할때 나무구슬 108개를 줄에 끼워 농은 염주를 구을리거나
불상앞에서 108번 절을 하는가하면 산사앞의 108계단을 오르면서 번뇌가
없는 열반의 세계를 기구한다.
이 종교의식도 세월따라 변하게 마련인 모양이다.
대학생들이 교수를 폭행한 패륜을 속죄하는 수단으로 108배를 했으니
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옛말에 비추어 본다면 108배가
아니라 그보다 몇십,몇백갑절의 절을 한다해도 용서될수는 없는
일이다.
그 패륜이 사병의 직속상관 사살,자식의 아버지 살해사건등과 맞물려
잇달아 일어나다 보니 "인간의 종말이 다가오는 징조가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이 고해를 벗어날수 있는 인간의 지헤가 메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4일자).
그런데 인간에게는 그것을 극복해 낼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즉 지혜다.
불교경천인 열반경에도 "지혜가 있을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다"고 불타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지혜로 극복되어야할 번뇌를 108가지로 나눈다.
눈 귀 코 혀 피부 뜻등의 육근과 그 대상인 빛깔 소리 냄새 맛 느낌
법등의 육진이 서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번뇌들이다.
육근이 육진에 접촉될때 좋고 나쁘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세가지
인식작용을 하여 18번뇌(6x3=18)가 된다.
또 이 세가지 인식작용에서 즐겁고 괴롭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세가지 마음이 생겨나는데 이것들이 육근과 육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육식과 인식작용을 하여 또다른 18번뇌를 만들어 낸다.
이들 36가지 번뇌에 전생 속세 내세등 3가지 세계를 곱하면 108번뇌가
된다.
이것이 백팔번뇌의 일반적인 풀이이나 그 바탕에 깊은 교리를 깔고
있는 접근방법도 있다.
어떻게 수행을 하여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하는 수행 실천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잘못된 것인줄만 깨달게 되면 곧 없어질수
있는 88가지 번뇌, 나쁜줄 알면서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물욕 명예욕
색욕 질투심 시기김등 10가지 번뇌, 이들 근본번죄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죄등을 합하여 백팔번뇌를 도출해 낸다.
불자들은 이들 번뇌를 벗어나고자 108이라는 숫자를 원용한 몇가지
종교의식을 만들어 냈다.
염불과 독경을 할때 나무구슬 108개를 줄에 끼워 농은 염주를 구을리거나
불상앞에서 108번 절을 하는가하면 산사앞의 108계단을 오르면서 번뇌가
없는 열반의 세계를 기구한다.
이 종교의식도 세월따라 변하게 마련인 모양이다.
대학생들이 교수를 폭행한 패륜을 속죄하는 수단으로 108배를 했으니
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옛말에 비추어 본다면 108배가
아니라 그보다 몇십,몇백갑절의 절을 한다해도 용서될수는 없는
일이다.
그 패륜이 사병의 직속상관 사살,자식의 아버지 살해사건등과 맞물려
잇달아 일어나다 보니 "인간의 종말이 다가오는 징조가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느끼게 한다.
이 고해를 벗어날수 있는 인간의 지헤가 메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