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리엔 다리가 많다"

오래전 우리나라 건설기술의 낙후성을 빚댄 말이다.

다리를 보면 그 나라의 건설기술수준을 알수 있다는 말처럼 교량건설에는
고도의 기술과 축적된 경험이 요구된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건설기술이 늘고 경제력도 생겨 다리의 다리가 줄어
들면서 멋진 다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외국사진으로나 볼수 있었던 아치교 트러스교 현수교 사장교등이 자태를
뽐내며 강과 계곡,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근년들어 다리들이 마구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난21일 수도서울의 성수대교가 동강났다.

92년7월31일엔 건설중이던 신행주대교가 붕괴됐고 그하루전인 30일엔
남해창선대교가 주저앉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팔당대교로 91년3월26일 공사중 "강풍"으로 상판이
날라가고 철제빔이 휘었다가 92년5월4일엔 중앙탑 하단부에 균열이 생겨
두번씩이나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남해창선대교와 신행주대교가 잇따라 붕괴됐을때도 지금처럼 "전국의
모든 다리를 철저히 점검한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제도와 법령을
정비한다"고 법석을 떨었었다.

외국에 나가서는 그렇게 잘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왜 이런 부실공사문제가
끊이지 않고 재발하는가.

이것이 정녕 "건설한국"을 뽐낸 주베일항만 페낭대교 레플즈시티 리비아
대수로를 건설한 우리건설업체들의 작품이고 한계일까.

사고가 터질때마다 책임자를 문책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곤
하는데..

전문가들은 그때마다 공사의 기획 발주 시공 감리 유지보수등 각단계마다
우리특유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지적한다.

"세계의 10년은 우리의 1년"

시간과 예산이 없다면서 서둘러 공사가 기획된다.

공사비와 공기는 적게 짧게 잡을수 밖에 없다.

건설업체들은 발주처의 공사비산정이 낮다고 불평하면서도 더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따낸다.

이익을 남기기 위해 더욱 낮아진 가격으로 하청 재하청을 준다.

저질자재를 사용하거나 설계변경을 거듭해 공사비를 증액한다.

이 과정에서 로비활동자금이 들어가고 그만큼 실제공사비는 줄어들게 된다.

신기술도입도 그 자체로선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준비 숙련단계를
생략하고 외국기술자 1,2명 데려다 놓고 억지소화해내고 있다.

공기단축은 건설업체의 지상과제다.

금융비용부담을 줄이고 인건비를 아낄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말려야할 발주처는 하루빨리 시설을 활용하고 싶어 오히려 공기단축을
독려한다.

정비 보수등 사후관리는 예산 이원타령만하며 아예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감안하면 재발방지대책은 자명하다.

사전기획단계부터 시간을 갖고 준비해 넉넉한 공기와 충분한 공사비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돈 덜주고 빨리하라면 부실공사를 재촉하는것 밖에 안된다.

발주단계에서도 사전입찰자격심사(PQ)제도를 실시해 유자격자만 입찰하게
하고 전문감리단을 육성, 부실요인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해외에선 잘하는 이유가 감리의 무서움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으로 억힌 우리의 감리제도는 술먹는 기회만 제공하는 잘못된
"의리"로 흐르고 있음도 부인할수 없는 현실이다.

사고가 날때마다 항구적으로 완벽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어차피
"항구적" "완벽한"것은 있을수 없는 것이다.

외국에선 수백년된 다리들이 놓여있고 아파트도 50년~1백년은 사용한다.

내구연수를 늘리는 단계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아쉽다.

전반적인 국민의식수준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선진국의 제도 법령을 베껴다
놔도 허사이고 곧 망각의 높에 빠져들고 말테니까.

차제에 부실공사역사관이나 하나 지어 부실사고들을 기록, 전시해 둠으로써
망각을 방지하는 것이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정부당국자들도 오죽 답답하겠는가 이해는 가지만 다시는 거부감마저
느껴지는 이런말도 더이상 안들었으면 좋겠다.

"지나번 한강대교의 부실문제가 거론될때 한강교량전부를 철저히 점검토록
지시해 완벽한 점검이 된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난5월 종로5가 통신구 화재사건이 난뒤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