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박광태 <민주당 국회의원> .. '평민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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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4계절 모습을 바꾸면서도 그 근본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육중한 자태로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산은 또한 자기정화 능력이
있다.
솔잎나방이,혹은 등산객이 산을 헤짚어 놓아도 산은 스스로 자기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힘이 있다.
내 고향 광주에 있는 무등산도 예외는 아니다.
곱디고운 부드러운 자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안으로 들면 급한 경사와
바위벽이 있는 무등산은 외유내강의 인격을 지녔다고 할만하다.
"평민산악회"는 지난87년 바로 이 무등산 자락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반독재투쟁을 하던 몇몇 인사들이 모여 산에 오르던 것이 우리
산악회의 시작이었다.
작은 출발은 폭넓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에 힘입어 1백30여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제법 커다란 산악회로 발전했다. 지금도 한번 산에 오르면
70~80명이 참석하고 있다. 필자가 7년째 회장을 맡고있다.
그렇다고 평민산악회가 정치성을 띤 단체는 아니다. 초기의 정치 성향
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지금 우리 산악회는 상조.친목성격이 더
강하다.
회원중 정치인은 필자와 정태성광주시의원 밖에 없다. 사업가나 소상인,
회사원등이 대부분이고 언론인이 더러 있다. 서로의 고충을 말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산악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산에 오를때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리본을 달고 내려올때는
양손에 쓰레기를 주어오는 "환경 산악회"의 모습도 보여주고있다.
무등산에서 시작된 우리의 산행은 백양산 내장산 월출산 두륜산 등
호남지역의 거의 모든 산으로 확대됐다. 모두 수차례에 걸쳐 다녀온
산이다.
산에는 유적이 있게 마련이다. 그 유적에는 또한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다. 우리의 발길은 선조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들 유적지를 빼놓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산행을 "등산"이라 하지않고 "문화유산답사"라
했다.
산에 오르면 항상 하는 "의식"이 하나 있다. "산상토론"이 그것이다.
준비한 도시락을 들며 우리는 세상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주제도
다양하다.
이홍재 광주매일신문 논설위원은 주로 역사에 관한 교훈과 국민의식에
관한 문제를,정시의원은 지역 발전에 관한 문제를,사업가인 선용상씨는
광주.전남지역의 기업활동 현황등을 얘기한다.
그런가하면 민초임을 자랑하는 어느 회원은 새로 이사온 이웃집 아가씨
를 화제로 올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필자는 주로 듣기만하는 편이다. 그러나 회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내 의정활동의 바탕이 된다. 산에서 내려올때 항상 뿌듯함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이 나에게 가르켜준 무변과 자기정화능력은 어느덧 나의 정치철학이
됐다.
의정활동을 시작하며 필자가 내건 "어떠한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나의 소신을 펼치자, 소리를 탐내지 않고 대도를 걸어야한다"는
좌우명도 바로 산에서 배웠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1일자).
육중한 자태로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산은 또한 자기정화 능력이
있다.
솔잎나방이,혹은 등산객이 산을 헤짚어 놓아도 산은 스스로 자기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힘이 있다.
내 고향 광주에 있는 무등산도 예외는 아니다.
곱디고운 부드러운 자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안으로 들면 급한 경사와
바위벽이 있는 무등산은 외유내강의 인격을 지녔다고 할만하다.
"평민산악회"는 지난87년 바로 이 무등산 자락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반독재투쟁을 하던 몇몇 인사들이 모여 산에 오르던 것이 우리
산악회의 시작이었다.
작은 출발은 폭넓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에 힘입어 1백30여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제법 커다란 산악회로 발전했다. 지금도 한번 산에 오르면
70~80명이 참석하고 있다. 필자가 7년째 회장을 맡고있다.
그렇다고 평민산악회가 정치성을 띤 단체는 아니다. 초기의 정치 성향
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지금 우리 산악회는 상조.친목성격이 더
강하다.
회원중 정치인은 필자와 정태성광주시의원 밖에 없다. 사업가나 소상인,
회사원등이 대부분이고 언론인이 더러 있다. 서로의 고충을 말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산악회가 된 것이다.
우리는 산에 오를때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리본을 달고 내려올때는
양손에 쓰레기를 주어오는 "환경 산악회"의 모습도 보여주고있다.
무등산에서 시작된 우리의 산행은 백양산 내장산 월출산 두륜산 등
호남지역의 거의 모든 산으로 확대됐다. 모두 수차례에 걸쳐 다녀온
산이다.
산에는 유적이 있게 마련이다. 그 유적에는 또한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다. 우리의 발길은 선조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들 유적지를 빼놓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산행을 "등산"이라 하지않고 "문화유산답사"라
했다.
산에 오르면 항상 하는 "의식"이 하나 있다. "산상토론"이 그것이다.
준비한 도시락을 들며 우리는 세상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주제도
다양하다.
이홍재 광주매일신문 논설위원은 주로 역사에 관한 교훈과 국민의식에
관한 문제를,정시의원은 지역 발전에 관한 문제를,사업가인 선용상씨는
광주.전남지역의 기업활동 현황등을 얘기한다.
그런가하면 민초임을 자랑하는 어느 회원은 새로 이사온 이웃집 아가씨
를 화제로 올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필자는 주로 듣기만하는 편이다. 그러나 회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내 의정활동의 바탕이 된다. 산에서 내려올때 항상 뿌듯함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이 나에게 가르켜준 무변과 자기정화능력은 어느덧 나의 정치철학이
됐다.
의정활동을 시작하며 필자가 내건 "어떠한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나의 소신을 펼치자, 소리를 탐내지 않고 대도를 걸어야한다"는
좌우명도 바로 산에서 배웠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1일자).